불탄 옛 히틀러 별장 복원 여부 놓고 찬반 의견 ‘팽팽’

알프스 산맥 일대에 위치한 ‘독수리 소굴’
화재 후 “이번 기회에 말끔히 정리” 주장
일각선 “그러다 극우파 성지 될라” 반발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州)의 베르히테스가덴은 알프스 산맥 고지대에 위치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1938년 당시 나치 독일 지도자였던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총통이 그곳에 ‘켈슈타인하우스’(Kehlsteinhaus)란 이름의 별장을 짓고 휴양소로 이용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켈슈타인하우스가 얼마 전 화재로 크게 훼손된 가운데 그 복원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의 별장이었던 바이에른주 켈슈타인하우스(일명 ‘독수리 둥지’)의 옛 전경(왼쪽 사진). 2차대전 후 알프스 산맥의 수려한 경치를 보며 맥주와 소시지를 즐길 수 있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오른쪽은 지난 10월23일 방화에 따른 화재로 대부분 소실된 현재의 모습. 게티이미지·로이터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독수리 둥지는 지난 10월23일 오후 방화에 따른 화재로 거의 전소(全燒)된 뒤 원래 있던 식당은 사라지고 현재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사건 직후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33세 남성이 방화 용의자로 지목돼 검거됐으며, 아직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구금돼 있다.

 

독수리 둥지는 화재 이전까지도 매년 수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였다. 이곳의 식당은 방문객들이 해발 1800m 이상 높이에서 알프스 산맥 경치를 감상하며 맥주와 소시지를 즐길 수 있었다. 다만 화재 이후로는 아예 일반인의 접근 자체가 차단되고 있는 중이다.

 

향후 독수리 둥지 부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선 독일 사회에서 이론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나치 시절 히틀러에 의해 비밀 회의장 또는 연회장으로 쓰인 ‘흑역사’를 감안해 이번 기회에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건물 잔해를 치우고 별장이 지어지기 전의 자연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전역에 남아 있던 히틀러의 잔재들이 이미 사라진 점을 근거로 든다. 과거 히틀러의 지하 벙커로 쓰인 곳이 콘크리트로 메워지고 그 지상엔 어린이 놀이터가 들어선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바이에른 주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독수리 둥지를 이대로 두면 히틀러를 추앙하는 이들 사이에 ‘생전에 꼭 찾아야 할 성지(聖地)’로 자리매김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독일은 히틀러 시대에 향수를 품은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이 강력하게 부상하는 중이다. 복원론자들은 일단 옛 건물의 원형 전부 또는 일부를 되살린 다음 예전처럼 식당으로 사용할지 아니면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잔학성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용도를 바꿀지 등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 세계일보 자료사진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히틀러는 1차대전(1914∼1918) 기간 독일군에서 복무한 것을 계기로 전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1919년 국가사회주의를 표방한 나치당에 입당한 뒤 뛰어난 대중 선동 능력을 인정받아 단숨에 당 지도자로 성장했다.

 

당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군소 정당의 난립으로 원내 과반 의원들이 지지하는 확고한 다수파 정부의 성립이 어려웠다. 나치당 역시 단 한 번도 원내 과반 다수당이 되지 못했으나 히틀러는 이 같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마침내 1933년 총리에 올라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얻었다. 이듬해인 1934년 고령의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뒤 히틀러는 대선 실시 대신 스스로 대통령직을 겸하는 길을 택했다. 이른바 ‘총통’(總統)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히틀러는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고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며 독재 정권을 완성했다. 1939년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략함으로써 2차대전(1939∼1945)을 일으켰다. 전쟁 초반 독일은 영국·프랑스 연합군을 물리치고 유럽 대륙 거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었으나, 1941년 소련(현 러시아)과 미국이 연합국 편에 서서 참전하며 차츰 패색이 짙어졌다. 전쟁 기간 유대인 약 600만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범죄를 저지른 히틀러는 연합군의 베를린 점령이 임박한 1945년 4월30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