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개인정보 유출이 AI 탓이라고?

日 IT기업 GMO 등 잇단 해킹
인공지능을 원인 지목했지만
시스템 취약점 미리 알고서도
사후약방문 같은 사과에 그쳐

일본 웹사이트 회원 가입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①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본인 인증 메일을 받고 ②이메일로 날아온 주소에 새로 접속해 ③성명, 휴대전화 번호 등을 입력하는 절차가 기본이다. 봇 차단이나 인증번호 입력 등 추가 절차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디가 사이트에서 자동 발급돼 별도 보관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해둔 사이트는 접속할 때마다 인증번호를 받아야 한다.

회원 가입을 해 둬야 앞으로 해당 서비스 이용이 편리해진다는 걸 알면서 늘 ‘꼭 가입해야 할까’ 따져보게 되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단계의 인증 절차를 거치는 만큼 보안도 철저하게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곤 했다.

유태영 도쿄 특파원

그런 믿음이 최근 산산이 깨지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개인정보 유출 소식이 들린다. 특파원 부임 후 가입한 사이트 중에서만 일본항공, 타임즈카, 무인양품, 빅카메라 등이 개인정보 유출 또는 유출 우려 사건의 대상이 됐다. 특히 차량 공유 서비스 타임즈카가 뚫리면서는 운전면허증 정보까지 해커 손에 넘어갔다. 이런 식으로 올해 4월부터 지난달 16일 사이 개인정보 유출 또는 유출 가능성이 있는 대상자가 중복 포함 2억6000만명분이라고 일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집계했다.



요새 ‘발신자 정보 없음’ 전화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음성 사서함 메시지가 부쩍 늘어난 것은 이 영향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아내는 일본 QR코드 결제 서비스에서 5000엔(약 4만3000원) 상당의 포인트를 제공한다는 제목의 이메일을 열었다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송신자의 이메일 주소가 해당 사이트 철자를 흉내 낸 것으로 돼 있었다.

지난해 3월 도쿄에 온 직후 한국 통신사 해킹 사태로 유심을 바꿀 수도 없어 전전긍긍했는데, 이제는 일본에서도 정보가 마구 털리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 유출의 심각성은 일본 정보기술 대기업 GMO인터넷그룹 해킹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화이트해커만 200명 이상 둘 만큼 보안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이 뚫리면서, 외환 거래용 클라우드 이용자들이 자신이 하지도 않은 거래로 수천만원대 손해를 보는 일이 잇따랐다. 해커는 개인정보를 공개하겠다며 거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GMO는 2024년 4월 그룹 내 보안 전문기업으로부터 시스템의 취약점을 지적받고도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다. 지난 8월5일 해커가 침입한 사실도 두 달을 훌쩍 넘겨 지난달 20일에야 알아차렸다.

결국 지난 2일 구마가이 마사토시 GMO 회장이 직접 사과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보수를 3개월간 30% 감액하겠다고 밝히고 피해 보상도 약속했다. 하지만 3시간여에 걸친 회견 중 상당 시간을 자신의 경영 철학을 늘어놓는 데 할애해 눈총을 샀다. 북한 해커집단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한 보도에 대해서는 자세한 답을 피했다.

특히 회견 도중 실무자 발언을 끊더니 “(재킷) 단추 제대로 잠그세요. 당신, 사과하고 있는데 단추를 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가”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나왔다. 부하 직원에 대한 고압적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이 장면을 보면서 2년 전 보안 경고가 가볍게 다뤄진 사실이 떠올랐다. 경영진에 문제를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인지 의심스러워서였다. 과연 이게 GMO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하는 질문도 하게 됐다.

구마가이 회장은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원인을 ‘인공지능(AI)의 발전’에서 찾으며 “범죄자들이 이 편리한 도구를 이용해 여러분의 일상과 사회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그의 말마따나 해커집단이 AI를 활용해 보다 손쉽게 보안 취약점을 발견하고 단시간에 광범위한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그러나 진작에 취약점을 지적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까지 AI 탓일까.

일상을 살아가려면 기업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소비자가 맡긴 정보를 기업들이 잘 지켜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점점 회의감이 든다. 지금도 한·일 양국의 금융, 교통, 쇼핑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면 여기저기서 사후약방문 같은 사과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