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말 국내 은행의 10억원 초과 고액 예금 잔액이 100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자 지급 능력 격차는 2015년 집계 이래 가장 크게 벌어졌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수출 호조로 대기업 실적이 크게 개선되며 은행에 쌓이는 여유 자금은 늘었지만, 호황의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퍼지지 못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저축성예금(정기예금·정기적금·기업자유예금·저축예금) 중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한 계좌의 총예금은 960조1150억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2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말(868조4800억원)보다 91조6350억원(10.6%), 1년 전(821조4130억원)보다 138조7020억원(16.9%) 늘었다. 고액 예금 잔액은 2021년 6월 말 700조원, 2024년 말 800조원을 차례로 넘어선 데 이어 올해 처음 900조원대에 진입하며 1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다만 실적 개선이 반도체 등 일부 업종에 집중되면서 그 효과가 기업 전반에 고루 미치지는 못했다.
ECO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1882%로 중소기업(322%)보다 1560%포인트 높았다. 이는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5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이자를 감당할 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대기업의 이자지급능력은 크게 개선됐지만 중소기업은 이를 따라오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격차는 최근 1년 새 급격히 벌어졌다. 지난해 2분기만 해도 대기업 362%, 중소기업 226%로 차이가 136%포인트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345%포인트(대기업 563%·중소기업 218%), 올해 1분기 864%포인트(대기업 1115%·중소기업 251%)로 확대됐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기업 영업이익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 올해 2분기 제조업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3903%로 1년 전(440%)의 약 9배로 뛰었다. 같은 기간 제조업 중소기업은 263%에서 401%로 오르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비율 상승도 자금 사정 개선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가 나쁠 때 중소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빚을 갚는 경향이 있어 이익이 늘지 않아도 이자비용이 줄면서 지표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일부가 매우 좋으면 총합은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성과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면 많은 경제 주체는 총합이 늘어난 걸 ‘착시’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