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챔프 박힘찬 단독 인터뷰
2차 예선 7위로 결선 올라 대역전극 펼치며 우승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어, MS 도전할 것”
주어진 시간은 불과 2분. 그 안에 60종 와인 리스트에서 한식 8코스 메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스파클링·화이트·레드 와인 3종을 골라 추천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눈앞에 놓인 와인 10잔을 시음하고 품종, 지역 등을 맞혀야 한다. 허용된 시간은 4분. 이쯤 되면 ‘와인의 신’도 울고 갈 일이다. 한국 최고의 소믈리에가 되는 길은 역시 멀고도 험난하다.
이런 지옥의 관문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이가 박힘찬(31·더그랜드롯데 서울 무궁화) 소믈리에다. 그는 지난달 22일 2026 코리아 호텔 & 레스토랑 소믈리에 대회 결선에서 난다 긴다 하는 업계 베테랑들을 모두 제치고 ‘왕좌’를 차지했다. 특히 결선 진출 7명 중 2차 예선 성적 7위로 올랐지만 대역전극을 완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어떻게 결선을 준비했기에 ‘꼴찌의 반란’을 일궜을까.
“천안 본가의 부모님께 우승 소식을 전하자, 첫마디가 ‘거짓말하지 마라’고 하시더군요. 7위로 결선 막차를 탔기 때문에 우승하리라고는 부모님은 물론 저 역시 꿈도 꾸지 않았어요. 부모님께 시상식 사진을 보여드리니 그제야 활짝 웃으셨답니다. 하하.”
박 소믈리에는 2년 전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이에 큰 자신감을 갖고 지난해에도 대회에 나섰지만 기대와 달리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호텔 소믈리에로 한정하던 대회 출전 자격이 지난해부터 모든 업장의 소믈리에를 대상으로 확대되면서 실력이 뛰어난 소믈리에들이 대거 지원한 탓이다. 올해도 역대 최대인 150명이나 지원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단다.
그는 어떻게 결선에서 순위를 뒤집었을까. “비결은 따로 없어요. 많이 마셔 본 게 전부입니다. 쉬는 날마다 미친 듯이 시음회장을 찾아다녔고, 밤잠을 줄여 가며 디캔팅, 테이스팅, 테이블 서비스를 끊임없이 되풀이했어요. 여러 와인 테이스팅 행사 일정에 맞춰 쉴 수 있도록 무궁화에서 스케줄을 배려해 준 덕도 컸습니다.”
결선 준비는 기출 문제 분석에서 시작했다. 지난 대회 문제 유형을 파악한 뒤 디캔팅 서비스를 제한 시간 안에 끝내는 연습을 반복했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처음 떠오른 생각을 망설임 없이 말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와인 1종에 24초 남짓 주어지는 마지막 문제, ‘4분 10종’ 과제를 매끄럽게 소화한 비결이다. 대회 이틀 전 피노누아, 네비올로, 샤르도네 품종을 집중적으로 테이스팅했는데 실제 결선에 이 품종들이 대거 나오면서 점수를 끌어올렸다.
그가 일하는 곳은 한식당이다. 하지만 가장 애를 먹은 문제는 의외로 첫 번째 한식 코스 페어링이라고 털어놓았다. “첫 과제라 너무 긴장했고 재료의 풍미와 조리법, 소스까지 아우르는 답을 2분 안에 찾아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반면 레드와인 서비스와 돌발상황 과제에서는 현장 경험이 빛을 발했다. 예비 부부의 저녁 자리라는 설정에 맞춰 “오늘 코스와 정말 잘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셨다”며 호스트를 끊임없이 치켜세웠다. “손님은 와인을 고르기 전에 소믈리에를 먼저 만나요. 첫인사부터 불편하면 어떤 와인을 추천해도 만족하지 않는답니다.”
사실 박 소믈리에는 고교 시절 이과생이라 소믈리에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성격상 관광이 맞을 것 같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선문대학교 국제레저관광학과에 진학했다. 군 복무 뒤 평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참 좋다”며 칭찬하던 교수의 추천으로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인턴으로 호텔 일을 시작했고,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로 옮겨 4년 반을 일했다.
술을 즐기지도 않던 그를 바꾼 건 반얀트리 사내 와인 교육이었다. 연차가 비슷한 동료가 강사와 와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한마디도 못 하는 자신의 모습에 큰 자괴감을 느꼈다. 그 동료가 바로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배성민 소믈리에다.
박 소믈리에는 지난해 10월 더 그랜드 롯데 서울로 옮겼는데, 사내 소믈리에 조직 ‘엘솜’이 진행하는 방한 와이너리 관계자 세미나와 블라인드 테이스팅 교육이 큰 힘이 됐다고 돌아봤다. 서울 명동에 자리한 무궁화는 외국인 손님 비중이 높아 글라스 와인과 음식에 페어링하는 와인 주문이 꾸준하다. 해산물을 많이 쓰는 계절에는 화이트와인과 샴페인이 주로 나가고 상견례 같은 축하 자리도 많아 음식과 페어링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터득했다. MBTI는 내향형(I)이지만 일할 때는 외향형(E)으로 바뀐다는 그는 “손님이 좋은 에너지를 받아 갈 때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그는 우승상금 700만원 가운데 일부는 가족과 응원해 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공부할 와인을 사는 데 쓸 계획이다. 그는 “우승했지만 진짜 꿈을 향한 걸음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국제적인 소믈리에 등용문인 CMS(Court of Master Sommeliers) 서티파이드 단계를 마친 그는 CMS 어드밴스드를 거쳐 마스터 소믈리에(MS)에 도전한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MS는 전 세계에서 300여명에 불과하고 한국인은 2016년 MS에 오른 뒤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경문 소믈리에가 유일하다.
“지난해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 포기하지 않고 탈락한 원인을 꼼꼼하게 분석해 봤어요. 뭐가 약점인지 찾아냈고 그 빈틈을 메우려 끊임없이 훈련한 것이 올해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으면 제자리걸음이에요. 도전해야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답니다. MS가 되는 그날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