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핵심 인물들의 거취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미 안보협의에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내달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쟁점 조율을 위한 양국 국방장관 회담이 예정된 상황에서 미 수뇌부들의 거취가 한·미 현안 논의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달 정부는 다음달 미국에서 예정된 국방장관회담에서 전작권 전환 쟁점을 조율하고 내년 초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목표 연도를 정한다는 ‘투 스텝’ 구상을 밝혔다. 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양국의 군사적 이견을 장관급 합의를 통해 좁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승리하면서 전작권 전환 협상의 카운터파트인 헤그세스 장관의 거취가 불투명해졌다. 공화당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8개월 넘게 이어진 이란 전쟁이 꼽히면서, 미 의회 승인 없이 전쟁을 진행한 헤그세스 장관의 책임론이 부상한 데 따른 것이다. 민주당은 이란 전쟁과 카리브해·중남미 지역 미군 작전에 대한 조사를 예고했고, 공화당 토머스 매시 의원도 헤그세스 장관 탄핵을 추진 중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남은 임기를 끝까지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거취를 둘러싼 유동성이 장기화된다면 한·미 장관 회담 일정이나 전작권 전환 로드맵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중간선거 이후 사임설이 불거진 루비오 국무장관의 거취도 외교, 안보 현안 논의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주요 외신은 루비오 장관이 중간선거 이후 사임 가능성을 검토했고, 백악관 측의 잔류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루비오 장관은 사임설을 부인했지만 향후 거취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다. 루비오 장관도 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만큼 두 장관의 회동이 성사되면 청해부대 작전 구역 확대와 핵추진잠수함 도입, 핵연료 사용 권한 확대 등 주요 안보협의 재개를 논의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미국 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번 회동에서도 실질적인 진전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루비오 국무장관이나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사임하거나 교체될 경우 한·미 간 주요 현안 협의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양국이 논의 중인 사안들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헤그세스 장관의 테네시주 상원 의원설 등도 나오는 만큼 한·미 국방장관회담 성사를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새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강경파 스티븐 밀러 부비서실장을 임명한 만큼 강경한 외교정책으로 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핵연료 농축·핵추진잠수함 도입 등의 경우 민주당 일각에서 우려를 표명해 온 사안인 만큼 추후 합의 이행을 두고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해당 사안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바탕으로 추진돼 왔기 때문에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논의에 관여할 경우 협의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민주당이 한·미 팩트시트의 핵심 합의사항인 핵잠 협력과 원자력협정 개정을 원점으로 돌릴 가능성은 작지만 미국 내 정쟁 심화가 핵잠과 한·미 원자력협정 등 양국 합의의 추진 동력을 약화할 수 있다”며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가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결에 관심을 집중할 경우 한국이 지향하는 의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추진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우려는 미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전날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전작권 전환과 핵잠 도입 같은) 새로운 이니셔티브 중 일부는 한쪽 또는 다른 쪽의 추진력 부족으로 인해 향후 2년 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도록 보류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전작권 전환이나 핵잠 도입에 제약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작권 전환, 핵잠 도입 등에 적극적인 정부·여당은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파장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양국 외교, 안보 현안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미국 하와이 태평양사령부 등을 방문한 뒤 이날 기자회견을 연 국회 국방위원장 진성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작권 전환에 대한 한국 측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자 미국 측도 일부 정책적 변수가 개입할 가능성을 인정했다”며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한다는 기존 합의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SCM이 내년으로 늦춰진 것을 두고도 “전작권 전환에 대한 이견과 무관하며, 양국 국방부 장관 등 군사 지휘부가 서로 가능한 일정을 고려해 이뤄진 일이라고 (미측은) 설명했다”고 전했다. 스티븐 쾰러 미 해군 대장은 진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관한 협조 요청에 “한·미 간 정책적 결정이 이뤄지면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