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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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우리들의 낙원으로 오세요”

외국인 명소로 뜬 낙원악기상가 ‘알리미’ 다국적 밴드… 우리는 외국인 서포터즈
<<사진 =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낙원악기상가 외국인 서포터즈가 상가 앞에서 연주를 하며 개성 넘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이크(30·미국), 미미(30·재미교포), 이안(40·영국), 말콤(34·캐나다), 피터(42·호주).>>
한여름 더위로 뜨거운 토요일 오후. 서울 인사동 거리 한쪽에 꾸며진 간이무대에서 기타를 멘 젊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온 노미미(mimi roh·30)입니다. 재미교포입니다. 컨트리 뮤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제가 만든 곡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사진 = 인사동 거리공연에서 컨트리송을 열창하는 미미씨. 낙원악기상가의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사진 = 한 어린이가 제이크의 우쿨렐레를 만져보고 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이기도 한 제이크는 어린이들과 금세 친해지는 능력의 소유자.>>
서툴지만 우리말로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마친 미미씨가 기타를 연주하며 컨트리송을 부르기 시작하자 무심코 지나치던 행인들이 음악소리에 하나둘 발걸음을 멈춘다. 한국에서는 낯선 컨트리 음악이지만 성조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한 외국인 관광객이 연신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춘다. 노래 세 곡을 열창한 미미씨의 순서가 끝나자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진다. 
<<사진 = 상가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이 미미씨의 기타로 포크송 한 곡을 연주해 보이고 있다. 난데없는 실력자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 재미있다.>>


<<사진 = 인사동 거리공연에서 멋진 연주와 노래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밴드 투머치. 여성 보컬 메기의 중국어 인사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느새 무대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어지는 밴드 투머치(2Much)의 무대. 여성 보컬 메기 후앙(25·중국)씨가 관객들을 향해 중국어로 인사하자 거리공연이 신기한 듯 멀찍이서 지켜보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니하오!”를 연발한다. 친숙한 올드팝으로 관객들의 흥을 한껏 돋우며 짧지만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투머치 멤버들이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사진 = 벽화가 그려져 있는 휴게공간에서 시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멤버들. 즉석에서 음악과 악기를 주제로 즐거운 대화의 장이 마련됐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이날 거리공연은 솔로로 활동하는 미미씨와 다국적 밴드 투머치로 구성된 낙원악기상가 외국인 서포터즈의 첫 데뷔 무대. 올해 5월 결성된 이들 외국인 서포터즈는 거리공연과 온라인 홍보활동 등을 통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낙원악기상가를 알리는 역할을 맡아 현재 맹활약 중이다.

며칠 뒤 상가 4층에 마련된 연습실에 다시 모인 서포터즈 멤버들이 지난 주말 공연을 화제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운다. SNS에 올린 공연 동영상과 사진에 달린 댓글 등을 꼼꼼히 챙겨보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답글도 열심히 남긴다. 
<<사진 = 연습 도중 상가 4층 야외공연장 `멋진 하늘`에 모여 간식 타임을 갖는 서포터즈. 잠시 쉬는 시간에도 음악에 대한 얘기로 웃음꽃이 핀다.>>


멤버들이 모두 모이자 다음 공연을 위한 연습이 시작됐다. 영어선생님, 회사원 등 각자 직업이 있어 자주 모이기가 쉽지 않아 일단 모이면 늦은밤까지 연습에 몰두할 때가 많다고 한다. 잠시 쉬는 동안 상가번영회 유강호 회장이 김밥 등 간식을 싸들고 응원을 나왔다. 멤버들과는 이미 친근한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사진 = 진성악기 유재복 대표가 단골손님에게서 기증받은 바이올린을 수리하고 있다. 올해 시작된 ‘악기 드리미 캠페인’은 중고악기를 수리해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사진 = 악기전문상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악기자판기 콘셉트로 꾸며진 고객용 엘리베이터의 외부(사진 위)와 내부 모습.>>
서포터즈를 외국인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낙원악기상가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그런 이곳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데 입주 상인들이 뜻을 모았고 여러 홍보전략들이 세워졌는데, 서포터즈 부분은 특색 있게 외국인들로 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된 거죠. 스포츠로 따지면 외국인 용병선수를 기용한 거네요.”라며 허허 웃는다.

<<사진 = 기타 합주를 마친 서포터즈가 악기점 직원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상가 상인들과의 교류도 이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사진 = 상가 3층 가수 송창식 앨범 자켓 벽화 앞에서 피터가 비슷한 자세로 포즈를 취하자 말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고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포토 포인트가 상가 곳곳에 숨어 있다.>>
<<사진 = 새 마이크를 구입하기 위해 상가 내 음향기기 전문점을 찾은 밴드 투머치의 남성 보컬 이안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가격흥정을 하고 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서포터즈 할인혜택이 주어지기도 한다.>>
<<사진 = 타악기 연주자인 말콤(오른쪽)이 단골 악기점에 새로 들어온 아프리카 전통 악기인 '젬베'를 두드려 보고 있다. 말콤은 젬베에 대한 소감을 SNS에 곧바로 올렸다.>.
악기를 평생 친구처럼 함께하자는 ‘2016 반려악기 캠페인’과 소비자들로부터 사용하지 않는 중고악기를 기증받아 상인들이 수리해 소외계층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악기 드리미 캠페인’ 등 낙원악기상가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 중이라고 유 회장은 덧붙였다.

1969년에 문을 열어 1970, 8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호황을 누렸지만 90년대 이후 노래방 기기의 등장으로 급격히 쇠퇴해 한때 철거 위기를 맞기도 했던 ‘우리들의 낙원상가’는 지금 외국인 서포터즈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사진·글 남제현 기자 jeh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