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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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입양모 "내 딸 진영이는 축복이죠"

불치병 걸린 한국입양아 10년 키워..유학생들 모금활동 나서
미국 뉴저지주 말튼(Marlton)의 한 미국인 가정에 입양돼 살고 있는 진영이(안진영.10.미국명 에미. Emily Grace Mangione)가 미국인 엄마 킴 맨지오니(Kim Mangione)와 함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맨지오니는 심장과 허파의 선천적인 기형과 디조지 증후군 등의 각종 불치병을 앓고 있는 진영이를 생후 14개월때 입양해 키우고 있다.<연합>
미국 뉴욕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쯤 차를 달려 도착한 뉴저지주 말튼(Marlton)에서 파란 눈의 가족들과 생활하며 병마와 싸우는 10살짜리 소녀 진영(안진영.미국명 에미.Emily Grace Mangione)이를 만날 수 있었다.

평범한 작은 집의 문을 두드리자 진영이를 입양해 키워준 미국인 엄마 킴 맨지오니(Kim Mangione)가 문을 열어줬고 한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진영이가 힘겨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했다.

안색은 어두웠고 옷 속엔 약한 뼈 때문에 몸을 지지하기 위한 패널(바디 캐스트)을 덧대고 있었으며 뭔지 모를 의료기기 장치와 호스들이 몸에 달려있었다.

엄마 맨지오니는 그래도 그날은 몸 상태가 좋은 편이어서 통증도 없고 소파에 앉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진영이는 서울에서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입양돼 자랐다. 설상가상으로 심장과 허파의 선천적인 기형으로 생긴 불치병을 갖고 있다. 선천적으로 폐동맥판이 폐쇄돼 있어서 호흡곤란을 일으키는데다 `디조지 증후군(DiGeorge Syndrome)'으로 면역결핍과 저칼슘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후 14개월 때 미국에 입양됐는데 당시 의사들은 2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인 엄마의 정성과 주변의 도움 덕분에 10살 생일을 넘겼다.

재발하는 심장마비와 뇌졸중으로 심장 수술만 7번을 받았고 여러 차례 다른 수술도 거쳤다.

진영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입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고 학교에는 가본 적도 없으며 친구나 언니, 오빠들과 뛰어놀아본 적도 없다.

면역력이 약해 감기에만 걸려도 치명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고 골밀도가 낮아 뼈가 잘 부러지며 근육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 위가 아니라 허파로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3살 때부터 음식을 먹지 못하고 튜브를 통해 하루에 몇 차례씩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근육발달이 늦어 같은 10살 또래보다 키도 훨씬 작고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뇌 발달도 늦어 지능은 4살짜리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장애를 가졌지만 미국인 엄마 맨지오니에겐 진영이가 사랑스럽고 예쁜 친딸 그 이상이다.

"에미(진영)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강해요. 오히려 그동안 내가 에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죠. 9년 전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에미의 사연을 처음 들었을 때 마치 하늘이 내게 이 아이의 엄마가 되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그걸 의심해본 적은 없어요"

맨지오니는 남편과 이혼 후 진영이와 자기 자녀 4명을 혼자서 키우는 싱글맘이다.

온종일 진영이 곁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직장생활은 꿈도 꿀 수 없고 따라서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진영이의 정기적인 병원검진비 등은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5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생활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맨지오니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가구 등을 칠해 판매하고 있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딱한 사연을 듣고 한 미식축구 선수가 그동안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납부금을 지원해줬었는데 그나마 오는 11월부터는 그 지원금도 중단될 예정이어서 집을 압류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진영이가 외부에 나들이하려면 휠체어를 실을 수 있도록 자동차를 개조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 1만6천달러(1천900만원)가 든다고 한다.

맨지오니는 진영이를 위한 웹사이트(www.emmiegrace.com)에서 기부를 받고 있다.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의 모임인 미국유학생모임(회장 김승환.www.miyoomo.com)도 진영이를 후원하기 위해 포스터를 제작하고 페이스북.싸이월드 등을 통해 사연을 알리는 등 모금활동에 나섰다.

진영이네 가족은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맨지오니는 진영이를 데리고 친엄마의 나라 한국을 가보는 게 꿈이고, 진영이는 흰 발레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가 꿈이다.

진영이는 음식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놀이를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한다. 진영이를 도와주도록 특수 훈련을 받은 개 `릴리'와 함께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보는 것도 진영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엄마 맨지오니에게 이렇게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진영이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이유가 뭐냐고 '우문(愚問)'을 던졌더니 역시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왜냐면 에미는 내 딸이고 우린 한가족이니까요. 에미를 내 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게 제겐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