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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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 '비오는 거리' 주인공 가수 이승훈

"'비오는 거리'는 꼭 넘어야 할 산 같은 곡"

 

비가 오는 날이면 듣고 싶은 노래가 더러 있다. 여기에 결코 빠질 수 없는 노래 중 하나가 ‘비오는 거리’다. 맑은 목소리와 산뜻한 멜로디가 가슴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준다. 특히 요즘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단골 메뉴다.

이승훈은 1997년 ‘비오는 거리’로 데뷔했다. ‘비오는 거리’는 이승훈을 가수로 만들어준 곡이지만, 동시에 그의 음악인생을 망쳐놓은 곡이기도 하다. 데뷔곡이 히트를 하면 그 다음 곡이 히트하기 어렵다는 가요계의 속설을 방증하는 셈이다. 이승훈은 경기도 안산에서 ‘이승훈의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강상준의 7080사람들이 그를 만났다. 그날따라 우연히 촉촉한 봄비가 내렸다.

- 실용음악학원 운영은 잘 되나요.

“수강생이 100명 정도 됩니다. 주로 초등학생, 중학생이 많아요. 아이들을 만나고 같이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재밌어요. 더 재미난 부분은 진정한 음치와 박치를 만날 수 있다는 거죠. ‘음치는 곧 박치’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웃음). 누구를 가르치는 것은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교육을 하다보면 훨씬 더 많이 배워요. 기본적인 가르치기 위해 저도 계속 연습을 해야 하잖아요. 가르치는 것만큼 실력이 많이 느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 ‘비오는 거리’ 발표한지 얼마나 되셨죠?

“1997년 발표했으니까 벌써 16년 됐네요. 녹음은 1995년에 했어요. 제 군대 후임인 작곡가 김신우 씨가 곡을 줬어요. 신우 씨가 제대 후에 종로 ‘영스타’라는 곳에서 노래를 했어요. 저도 ‘영스타’에서 공연할 때였는데요. 어느 날 신우 씨가 녹음을 하자고 제의하더라고요. 노래 듣고 한 일주일 후에 녹음을 시작했어요. 1995년에 녹음을 마치고 본명으로 앨범이 나왔다가 매니저가 사라지는 바람에 앨범이 사장됐어요. 1997년 ‘BMZ코리아’라는 회사에서 다시 앨범을 냈어요. 그 앨범이 바로 ‘비오는 거리’입니다.”

- 처음 곡을 듣고 어땠나요.

“신우 씨가 저를 위해서 곡을 써놓은 거예요. 군에서 1년 넘게 같이 생활하면서 제 스타일에 맞게 쓴 곡이라 좋고 나쁘고가 없었어요. 그냥 제 곡이었던 거죠. 신우 씨가 앨범을 편곡하는데 보니까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하더라고요. 저와 마찬가지로 음악이 화려하진 않아요. 둘 다 포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화려한 음악을 추구하진 않거든요. 그후 나온 제 앨범의 곡들도 전혀 화려하지 않아요. 노래방에서 부르기 어려운 곡들이 많죠. 통기타와 퍼커션만 가지고 노래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이승훈 음악하면 얼마나 힘을 빼서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 김신우 씨와는 어떻게 가까워졌나요.

“제 해군 홍보단 후임입니다. 저랑 같이 군 복무 했던 가수 윤태규 씨가 신우 씨를 섭외를 했어요. 군 입대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요. 워낙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지라 음악에 대한 해석이 같았어요.” 

- ‘비오는 거리’는 어떤 곡인가요.

“‘비오는 거리’는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이 부르면 동요처럼 들려요. 그만큼 부르기 힘든 곡이에요. 1995년에 녹음했으니까 20년 가까이 된 곡이지만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아요. 악기 사용이 거의 없고 노래에 힘을 빼서 그런 겁니다. ‘비오는 거리’는 신우 씨 앨범에도 수록됐어요. 다른 가수가 ‘비오는 거리’를 리메이크했는데 영 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이 노래를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겁니다.”

- ‘비오는 거리’를 직접 불러보니까 정말 어렵던데요.

“제가 노래를 무척 잘하는 사람입니다(웃음). 노래 한지 30년 정도 됐는데 그때 노래와 지금 노래가 별반 다르지 않아요. 나쁘게 말하면 테크닉이 없는 것이고요. 좋게 표현하면 제가 대단한 테크닉의 소유자인 거죠. 사람들이 한 사람의 노래를 오랫동안 들으면 지루하게 느끼잖아요. 저는 ‘비오는 거리’라는 곡을 객관적으로 보는데요. 자랑을 떠나서 나중에 가끔 들어보면 ‘이 노래 참 좋은 노래다’라고 느낍니다. 당시 유행하던 악기, 리듬, 창법 등을 다 뺐기 때문이죠. 앨범에 삽입한 노래는 유행이 지나고 나면 구닥다리(?) 음악이 될 거라고 예상을 했어요. 반면 포크는 유행과 관계없는 장르잖아요. 예를 들어 ‘아침이슬’을 들으면 촌스럽다고 느껴지지 않잖아요.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멋있게 부르려고 노력하지 않은 편이에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예전의 목소리처럼 부를 순 없지만 그 느낌은 살릴 수 있어요.” 

- ‘비오는 거리’ 앨범 발매 후 반응은.

“1997년은 LP가 사라지고 CD가 등장하는 시기였어요. 사람들이 CD는 비싸서 잘 안사고 테이프로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당시 길거리에서 테이프를 많이 팔았는데요. 흔히 ‘길보드’라고 하죠. 종로1가에서 동대문까지 걸어가면 ‘비오는 거리’가 끊이질 않고 계속 나왔어요. 반응이 아주 좋았죠.”

- ‘비오는 거리’이후 앨범은.

“작곡가 김지환 씨와 2집 ‘말해주지 그랬어’를 발표했고요, 3집부터 주로 제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진짜 이승훈 스타일의 곡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지금까지 계속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3집에 수록된 ‘마지막 편지’는 이영준 씨가 썼어요. 영준 씨는 ‘휴식’이라는 그룹 멤버입니다. 이 친구가 언젠가 곡을 들고 와서 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3집이 시작이 된 겁니다. ‘마지막 편지’는 정말 슬픈 노래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승훈의 노래인지 잘 모르더라고요. 좋은 노래는 노래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2011년에 ‘굿바이 내 사랑’이라는 곡을 발표했어요. 4집을 낼 때는 여태껏 제가 했던 음악, 철학, 삶의 방식의 점을 찍어가는 시기였어요. 4집 앨범은 누구에게 준다거나 판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가끔 나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면 그 앨범을 드리고 있습니다.”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형이 음악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형이 수집한 음반을 많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팝에 관심이 생겼죠. 영어를 잘 모르던 때라 가사를 전부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어서 외우곤 했어요. 지금보다 그때가 더 발음이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가장 좋아했던 곡은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1위 했던 프레디 아귈라의 ‘아낙’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합창을 했고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기타를 만지게 됐어요. 기타를 배우기 전까진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 안했어요. 저는 지금도 제가 가수라고 말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요. 그냥 노래가 좋아서 하는 것뿐입니다. 대학 때 음악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었어요. 본격적인 음악은 해군 홍보단에서 시작했어요. 동아리 선배 중에 해군 홍보단 출신이 있었는데요. 그 선배가 제대할 즈음에 학교에 와서 해군 홍보단에 지원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하더라고요. 입대 전인 대학 2학년 때 학교에서 단독콘서트를 했어요. 사실 학교에서 개인 콘서트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요. 동아리 콘서트 명목으로 했지만 사실은 제 단독 콘서트였어요. 대학 졸업할 때까지 콘서트를 했어요. 학교 내에선 반응이 제법 좋았어요. ‘어쿠스틱스’라는 팀명으로 통기타 2개, 건반 1개, 퍼커션 1개와 함께 노래를 했어요.“ 

-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1997년 1집 ‘비오는 거리’ 이후 16년이 지났는데요.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후회가 없고요. 음악생활을 하면서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힘들다고 느끼진 않을 것 같아요.” 

뉴스팀 wtod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