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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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창, 발뺌하다 왜… 검찰, 또 꼬리자르기?

‘음란행위’ 혐의 김수창 제주지검장 즉각 사표수리 배경은
공연음란 혐의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던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18일 사표를 제출하자 법무부가 전격 의원면직 처리한 데 대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김 지검장의 바지에서 증거물을 확보했으며 최초 목격자의 진술에서 특정 인상착의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 지검장이 재간이 없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최근 ‘재력가 장부 검사’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검찰은 또 한번 메가톤급 ‘태풍’에 휘말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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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바지에서 증거품 확보

제주지방경찰청은 이날 백브리핑을 통해 사건 당일 한 남성이 음란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감식 중인 CCTV 화면에는 신원 미상의 남성이 1시간가량 하의를 내리고 음란행위를 하는 장면이 찍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목격자 A(18)양이 “녹색티와 하얀 바지, 머리가 벗겨진 것을 보니 비슷하다”고 진술해 김 지검장을 연행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 지검장을 체포해 유치장에 입감하면서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음란행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화장품류를 발견해 정황 증거로 확보했다. 그는 경찰에서 자신의 이름을 대지 않고 동생 이름을 대 사실상 수사를 방해했다. 지난 15일 오후 제주로 급파된 이준호 대검 감찰본부장은 경찰 수사를 지켜보고서 감찰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하루 만에 철수했다.

경찰이 공개한 사건 내용은 지난 12일 밤 A양이 제주시 중앙로(옛 주소 제주시 이도2동) 인근 분식점 앞을 지나다 한 남성이 음란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A양은 12일 오후 11시58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어떤 아저씨가 ××행위를 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 소속 김모 경위 등 2명이 바로 순찰차를 타고 출동했고 13일 0시08분쯤 분식점 앞에 도착했다. 경찰은 분식점 앞 테이블에 앉았던 남성이 순찰차가 다가가자 자리를 뜨면서 빠르게 옆 골목길로 10여m 이동하는 것을 보고 도주하는 것으로 판단해 남성을 붙잡았다. 0시45분쯤이었다. A양은 112에 신고할 당시 음란행위를 한 남성이 술에 취해 있었다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인 신분 수사대상

대검찰청에 따르면 김 지검장은 전날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김 지검장은 이런 속사정을 감춘 채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 들러 “황당하고 어이없는 봉변을 당했다”며 항변했다. 특히 “(오해로 인해) 저와 제 가족은 죽음과도 같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평생 한이 될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하루빨리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검장이 이처럼 입장을 뒤집은 것은 경찰 수사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김 지검장 의혹이 불거질 당시 현장 주변 CCTV 녹화물을 3개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통상 감식에 2∼3일가량 걸리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이르면 20일쯤 결과를 받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 지검장 사건이 불거지고 난 뒤 진실게임 양상으로 비화하던 논란이 종식되는 건 시간문제인 상황이 된 것이다.

김 지검장은 이런 상황에서 더 버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검찰청의 감찰을 받게 되고, 그럴 경우 본인이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의 기회마저 박탈되기 때문에 차라리 감찰 착수 전에 서둘러 물러나는 게 본인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득실 계산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검찰은 일단 이런 상황을 부인하고 있다. 이날 검찰이 김 지검장 사표를 즉시 처리한 것은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 현직 검사장이 본인 사건을 직접 지휘하는 상황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상황을 계속 유지하다간 향후 어떤 수사 결과가 나와도 논란거리가 될 게 뻔한 만큼 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는 대검 입장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단순한 의혹만으로 현직 검사장 사표를 이렇게 즉각 처리하는 것은 검찰 내부 생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경찰 수사로 혐의가 사실로 확정되기 전에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김 지검장은 일단 대검찰청의 고강도 감찰을 피할 수 있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검찰 입장에서도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현직 검사장을 조직에서 방출해 ‘꼬리 자르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지검장은 이제 자연인 신분으로 경찰 수사를 받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김준모 기자, 제주=임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