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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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여성의 날…한국 직장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육아휴직, 승진에 악영향…사문화 된 생리휴가, "써본 적도 없어요"
여성 근로자의 출산전후휴가 유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육아휴직기간을 퇴직급여에 산정하지 않는 등 모성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장 70곳이 단속에 적발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22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취약 사업장 101곳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해 70개 사업장에서 모성보호 관련 위반사항 92건, 체불금품 1억5400만원을 적발했다.

주요 법령 위반 유형은 ▲출산전후휴가 유급의무 미이행 24건(250명·체불액 8600만원) ▲육아휴직 기간의 퇴직급여 미산정 및 미지급 16건(53명·체불액 4800만원) ▲모성보호 관련 근무시간 위반 48건(149명) 등이다.

 

또 임신·육아휴직 등을 이유로 상여금 산정에 불이익을 주거나 육아휴직, 배우자 출산휴가 등을 부여하지 않은 사례도 적발됐다.

A사는 육아휴직을 포함한 3개월 이상 휴직자에 대해 승격 대상자에서 누락하고 1년간 보장된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할 경우 승격 심사 기회를 박탈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B사는 근로자 사직 이전에 후임자 채용 절차를 진행하면서 육아휴직을 부여하는 대신 출산휴가만 쓰고 사직서를 제출할 것을 종용했다.

고용부는 적발 사항 92건에 대해 시정을 지시해 현재 65건이 시정 완료됐으며 육아휴직을 부여하지 않은 1건에 대해서는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나영돈 고용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사업장에서 모성보호와 관련된 위법행위는 여성 근로자의 경력단절과 직접 연관된 중요한 사안이므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감독을 통해 현장에서 법·제도가 실제 작동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육아휴직을 경험한 공무원의 절반가량이 육아휴직 직전에 비해 성과급 등급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정부부처 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직전보다 그 직후 성과급이 오른 경우는 11.7%, 유지한 경우는 40.8%, 낮아진 경우는 47.5%였다. 반면 비경험자는 경험자의 2배가 넘는 26.9%의 성과등급이 올랐고 50%는 동일했다. 낮아진 경우는 23.1%에 그쳤다.

연구원은 지난해 8∼9월 고용노동부 및 법무부·미래창조과학부·보건복지부·법제처·경찰청 등 9개 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 52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육아휴직 후에도 우수 등급인 S등급을 유지한 공무원은 3.9%에 불과한 반면 비경험자는 3배가 넘는 12.5%가 이 등급을 유지했다. 보직배치에서도 육아휴직 전에 정책수립과 집행, 인사와 예산 같은 노른자위 부서에서 근무했던 사람이 같은 부서로 복귀하는 비율은 매우 낮았다.

공무원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승진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자가 63.6%였다. 특히 비경험자는 93.9%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대답했다. 성과급에는 73.4%, 인사평가에는 62.5%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남성 공무원 사회에서는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다”면서 “비경험자의 부정적 인식이 훨씬 높다는 것은 이후에도 육아휴직 사용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여성비하 관련 이미지

한편, 사회적 인식 미비로 사문화된 생리휴가가 여성혐오의 소재가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생리휴가를 휴일과 붙여 연휴를 만드는 일부 여성의 사례가 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휴가를 마음대로 갈 수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생리휴가는 1953년 생겨났다. 근로기준법 제73조에서는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최초에는 휴가를 가도 월급이 깎이지 않는 유급휴가였다.

유급휴가 일 때도 사회적 인식 미비로 사용하는 여성이 많지 않았던 생리휴가는 2004년 주40시간제(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경영계는 “유급생리휴가를 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근무 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리휴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1000명 이상 사업장부터 무급이 된 생리휴가는 300명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된 데 이어 2012년부터는 2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무급이 됐다. 게다가 눈치를 보면서 사용해야 하고 월급까지 깎이는 생리휴가는 법 조문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제도가 됐다.

유한킴벌리가 지난해 20∼30대 여성 직장인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리휴가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다’는 응답이 76%였다. ‘1년에 한두 번 사용해봤다’는 응답은 12%로, 사실상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었다.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2%는 ‘상사에게 눈치 보여서’를 꼽았다. 36%는 ‘주위에서 아무도 안 써서’라고 응답했다.

여성들은 “쓰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생리휴가를 남성들은 “생리휴가는 다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쓰는 사람은 적은데 욕먹는 사람은 많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연차휴가를 제대로 보장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생리휴가 사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며 “(남녀가) 서로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플 때, 필요할 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