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당연히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윈드햄 메드(26)는 아직도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믿을 수 없다. 그는 지난 2012년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 즉,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 발병 우려가 높다.
그런 윈드햄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오스트리아의 한 남성잡지사가 그의 피를 이용해 책을 인쇄하고 싶다며 혈액 기증을 부탁한 것이다. 피를 뽑는다? 그것도 HIV 양성환자의 피를? 윈드햄은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윈드햄에게 피를 부탁한 잡지사는 진심이었다. 오스트리아 남성잡지 ‘밴가르디스트(Vangardist)’를 펴내는 이 잡지사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버리기 위해 이 같은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에 따르면 해당 잡지 인쇄를 맡은 에이전시는 윈드햄 외에 HIV 양성환자 2명의 혈액을 더 채취했다. 그리고 이들의 피를 인쇄용 잉크와 섞기 전, 살균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3개월 마다 검진을 받아온 윈드햄은 잡지 인쇄를 위한 혈액 기증을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순간으로 지목했다. 그는 “매번 침대에 앉았지만 그때만큼은 달랐다”며 “수천명이 볼 잡지에 내 피를 섞은 잉크를 사용한다니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윈드햄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단 걸 알게 되니 정말 뿌듯했다”며 “부디 많은 이들이 우리의 피로 인쇄된 책을 본 뒤, HIV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이어 “우리도 보통 사람과 똑같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HIV 양성환자들의 피로 인쇄된 ‘밴가르디스트 한정판’은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스위스 등지에서만 팔릴 예정이다. 현재 3000부 인쇄가 예정되어 있으며, 판매가는 50유로(약 6만원)다.
바이에흘 편집국장은 AFP통신에 “HIV 양성판정을 받은 이들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과 오명에 항거하는 성명을 내고 싶었다”고 한정판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을 손에 쥔다면 HIV 양성환자를 안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밴가르디스트 한정판 인쇄와 관련해 영국 미러는 “해당 잡지를 건드린다고 해서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며 “많은 이들이 HIV 양성환자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한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HIV는 인간 면역체계를 공격하며, 아직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다. 다만, 환자가 조금 더 건강하고 오래 살 방안만 마련됐을 뿐이다. 현재 전세계에 약 3500만명의 HIV 양성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BBC·영국 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