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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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함께 이겨내자] “환자의 손 놓을 수도 놓아서도 안돼…”

메르스 현장 동료 간호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 땀방울 모여 반드시 결실 볼 것"
“선생님, 힘들고 무서워요.”

메르스 감염 확산 사태가 지속되면서 조혜숙(45·여·사진) 간호사에게 고민이 생겼다. 메르스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다 감염된 간호사의 사례가 나오자 몇몇 간호사들이 두려움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노조일을 맡으면서 현장을 떠나있는 조 간호사는 17일 메르스 공포에 사로잡힌 후배들을 위해 펜을 들었다.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동료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녕하신지 여쭙는 마음이 더 아픕니다. 갑자기 온 나라를 삼켜버린 메르스 때문에 환자들과 같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우리 의료진은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기도 하고, 힘든 음압격리치료과정에 투입되어 너무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병원 폐쇄, 메르스환자 급증 소식은 온 힘을 다해 치료에 전념하는 우리에게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대규모 감염이 이뤄지는 현실은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감염을 무릅쓰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우리를 보는 외부인의 시선 또한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절망스럽습니다. 혹시 병원에서 바이러스가 옮겨오지나 않을까 피하기도 하고, 우리 병원 의료인 학부모가 많다는 이유로 학교를 휴업하고 있습니다.”

조 간호사는 메르스 환자를 돌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학부모’ 의료인들이 떠올랐다. 오전 6시에 출근해 별을 보며 퇴근하고, 별 보며 출근하면 새벽달을 보고 퇴근해야 하는 근무 여건에도 메르스를 막겠다며 온몸을 던지고 있지만 시민들이 이 같은 의료진의 노력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단국대병원에서 21년간 일해온 ‘베테랑 간호사’였다.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더운 여름에도 고생하는 후배 간호사들에게 ‘용기’와 ‘사명감’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 가지 명확해진 사실은 현 시점에서 메르스를 종식하는 일은 결국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손을 놓을 수 없습니다. 놓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항상 지켜온 것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은 우리를 보며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 모두가 혼연일체가 돼 서로 격려하고 솔선수범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간호사는 환자에게 거친 말을 들어가면서도 아픈 환자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한 나날들, ‘엄마 회사 가지 말라’며 붙잡는 어린 아이가 눈에 밟혀도 ‘간호사 하길 참 잘했다’고 서로를 다독였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는 아직도 20여년 전 대학 강당에서 낭독했던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는 나이팅게일 선서의 문장을 기억한다.

“우리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며 극복해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지금이지만 우리의 땀방울이 모여 반드시 결실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희망의 눈빛을 꼭 현실로 만들어 냅시다. 6월17일 조혜숙.”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