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4개월 동안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여군 A중사를 지켜보던 그 부모도 국민신문고와 육군본부 민원실에 절절한 모정(母情)을 담아 도움을 요청했던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부모의 탄원도 군에서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A중사의 어머니가 육군본부 민원실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일부 발췌). A중사 가족 제공 |
A중사의 어머니 K(55)씨는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지난해 11월14일 국민신문고(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온라인통합민원창구)에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로 시작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육군본부, 국방부 차원에서 조사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밝혔다.
K씨는 같은 해 12월10일 육군본부 민원실에 “이곳저곳 하소연을 해봐도 제 딸아이의 억울함을 풀 곳이 없어 이렇게나마 도움을 청하고자 연락을 드린다”는 진정서를 냈다.
탄원서와 진정서에는 성추행을 당한 여군을 딸로 둔 어머니의 애절함과 함께 분노의 감정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K씨는 “딸아이가 부대 내에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처해 국방헬프콜(24시간 군내 성 관련 인권침해 신고 및 피해자 상담 조직)에 도움을 청했다”면서 “딸이 ‘왜 도와주지 않느냐’, ‘정말 내가 죽어야지만 지금껏 당한 억울함을 풀어줄 것이냐’고 전화를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딸은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며 “정말 딸아이가 죽어야만 억울한 사실들이 밝혀질 수 있는 건가. 죽어도 밝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진정서 말미에 “군인을 딸로 둔 엄마로서 딸아이가 점점 고립돼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제 자신도 점점 답답해진다. 군생활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던 아이가 이제 점점 지쳐가고 있다. 백(배경)도 없고 힘도 없는 부모를 만나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A중사의 어머니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딸의 얘기를 (부대에서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며 “너무나 원했던 군인인데 스스로 전역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군인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서 딸의 뜻을 꺾지 못했는데 이제는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