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군내 성폭력…군 ‘안일한 인식’
군내 성폭력의 뿌리는 깊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군 당국은 대책을 내놓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유사한 사고가 재발해 사후약방문식 처방에 그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001년 모 사단장이 부속실 여성 장교를 성폭행한 사건을 계기로 성 군기 위반사고 방지에 대한 지침을 하달했지만 2003년 7월 또다시 김모 일병이 부대 내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육군 참모총장의 명의로 성 군기 위반 사고 예방특별대책 등을 내놓았지만, 그때뿐이었고 군내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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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에만 군 외부에 알려진 성폭력 사건만도 셀 수 없을 정도다. 2012년 3월에는 특전사령관 모 중장이 사단장 시절 공관에서 여군 하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일이 드러나 자진전역했고, 같은 해 4월에는 강원도 육군 모부대 한 준장이 회식 자리에서 여군 하사를 강제로 껴안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술자리에서 부하 여군들에게 술을 따르도록 강요한 육군 모 부대 사단장이 보직해임돼 스스로 전역했다. 그러나 매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 대위 사건에서도 1심 재판부였던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군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초범이고 성추행 범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에 “군사법원이 성폭력에 턱없이 너그럽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하사 아가씨”… 군의 왜곡된 시선
군 당국은 성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인식부터 사회 통념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전 17사단장 송모(56) 소장의 변호인은 항소심에서 ‘대통령 포옹론’을 들고 나왔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변호인은 “대통령의 포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병사들을 격려하는 행위로 인식된다”며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도 군부대를 방문할 때 남자 병사들을 포옹해주곤 한다”고 말했다. 송 소장의 여군 성추행 행위를 대통령의 격려 포옹과 같은 잣대로 비교한 것이다. 또한 국군기무사령관 출신인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지난1월 육군 여단장(대령)의 여군 성폭행 의혹사건과 관련해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군 인권특위)에서 피해자를 ‘하사 아가씨’라고 언급하며 “전국의 지휘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정상적으로 나가야 할 외박을 제때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섹스 문제를 포함해 문제를 야기한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발언해 여군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군 내부에서 여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고 그릇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여군들 성폭력 83% 대응 못해
지난해 전국여성위원회에서 군인권센터에 의뢰한 ‘군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여군은 5명 중 1명꼴로 성추행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추행 피해자 중 83%는 상관이 자신을 괴롭혀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로는 ‘소용이 없다’, ‘불이익이 두렵다’ 등을 들었다. 헌병이나 군검찰, 징계위원회 등 군 기관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여군 비율도 80%를 웃돌았다. 성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여군들이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군 당국을 얼마나 불신하는지 잘 보여주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군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처벌 강화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처벌 가능성을 높이고, 성폭력 전담수사관제도와 전담검찰관제도, 전담재판부제도 도입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성폭력 예방활동은 외부 전문가와 공조해야 한다”며 “국회 군 인권특위가 활동을 마치며 선정한 결의안 중 군 인권보호관이라는 군 옴부즈만 제도도 인권침해(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