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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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시스템 도입에… '기부왕' 경비원도 쫓겨날 판

“(대학에서)감사 인사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를 헌신짝 버리듯 내버리려 하니 배신감이 듭니다.”

지난해 말, 현직 경비원으로는 최초로 ‘아너 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의 회원이 돼 화제를 모았던 김방락(68)씨는 격정을 토로했다. ‘내 집’처럼 생각하며 10년 넘게 일해 온 서울 성북구의 한성대에서 느닷없이 내쫓길 위기에 처하게 돼서다. 그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 대학 학생 5명에게 200만원씩 총 10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을 만큼 한성대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김씨로선 참담함을 느낄 만했다. 그는 “(나의) 기부 사실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학교 측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저도 오랜 직장이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토사구팽’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간 박봉을 아껴 마련한 1억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던 한성대 경비원 김방락(68)씨가 23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23일 한성대 관계자와 경비원 등에 따르면 이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경비원 총 16명은 지난달 용역업체를 통해 해고통보를 받았다. 연말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해고 배경을 설명하거나 어떤 위로도 하지 않았다. 이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최근 이 대학이 도입하기로 한 무인경비시스템 때문이다. 한성대는 무인경비시스템 전문 업체와 계약을 맺어 기존 경비 인력의 절반 가까이를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성대 관계자는 “많은 대학이 이미 도입한 무인경비시스템을 우리 학교도 이번에 들이면서 생기게 된 문제”라며 “용역업체를 통해 소속 경비원의 이직을 돕는 방안 등을 찾아보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같은 사례는 비단 한성대뿐만이 아니다. 최근 경비절감 차원에서 무인경비·주차시스템을 도입하는 기관과 아파트 등이 늘면서 경비원들이 무더기 해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서초구 등에 따르면 이달 초 우면동의 한 아파트도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경비원 12명 중 8명을 줄일 계획이었다. 이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일부 주민이 택배 수령, 환경 미화 불편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관할 구청에 민원까지 제기하면서 진통을 겪었다. 이 아파트의 한 경비원은 “기존 동마다 설치된 초소를 없애고 정문과 중앙 두 곳에만 초소를 운영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아파트 관리사무소 대신 용역업체를 통해 해고 계획을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도 같은 이유로 경비원 감축을 시도했다가 주민 반대 등으로 보류된 상태다.

이런 경비원의 해고 바람 속에서 성북구의 ‘동행 프로젝트’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성북구 아파트 입주자, 관리소장, 관리업체, 경비원, 구청장 등 관련 이해관계자는 올해 초 경비원 고용 안정을 함께 약속했고, 지난 8월에는 경비원 휴식공간 환경 개선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