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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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애독서] 사색·성찰의 일생… 세계와 인간을 깨우는 지혜

입력 : 2016-05-16 22:05:54
수정 : 2016-06-15 19: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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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신영복 지음
꼭 20년 20일의 감옥 생활 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던 신영복 선생. 그가 지난 1월 15일 우리 곁을 떠났다. ‘담론’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지혜를 전해주는 그의 마지막 강의록이다.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많은 책을 냈지만 그의 마지막 저작인 이 책은 생의 마감을 예감이라도 하신 듯 지금까지의 사색을 종합한 강의록이다.

이 책은 ‘고전으로 읽는 세계 인식’을 다루는 1부와, 출옥 이후 매일 대면하며 살아가는 현재적 사회적 삶과의 대비 속에서 빗어낸 사색과 지혜를 전해주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
1부에서 그는 동양의 고전과 주요 사상가들을 현재적 시선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축자적 해석이나 자구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노력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고전 읽기의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고전 공부를 “인류의 지적 유산인 고전 텍스트를 토대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실천”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말해온 ‘탈문맥의 창조적 실천’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2부에서는 자신의 삶의 고비마다 남긴 사색의 흔적을 바탕으로 지혜를 전해준다. 그에게는 세 가지 방법론이 있다. 첫째는 관계론적 인식론이고, 둘째는 주변부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변방의 시좌’이며, 셋째는 사회적 약자의 시선이다. 관계와 변방과 약자라는 세 가지의 인식, 시좌, 시선이 만나 신영복만의 지혜를 엮어내고 있다.

나는 사무실에 ‘떨리는 지남철’이라는 그의 잠언을 걸어놓고 있다. ‘담론’에서도 그는 이 잠언을 환기하며 성찰적 방향성을 찾아갈 것을 주문한다. 지남철처럼 떨면서도 북극을 가리키는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 그러나 그 방향성은 확고 불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불안한 전율’을 통해 부단히 새롭게 재확립되어야 하는 게 ‘성찰적 방향성’이다.

우리는 반공과 개발독재의 시련 속에서 빚어진 위대한 사상가를 떠나보냈다. 이제 그의 말을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마지막 강의를 담은 잠언록과도 같은 이 ‘담론’의 지혜가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다.

마침 지난 일요일 “신영복 선생의 뜻과 정신을 더 깊게, 더 넓게, 더 오래도록 이어가고자” 하는 사단법인 ‘더불어숲’ 창립대회에 다녀왔다. 선생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거나 장기수 출신의 학자일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스승이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진 예지자가 아닐까 싶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