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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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성교육 강사로 청소년 멘토되다

서울시 지원사업 큰 호응 / ‘인트리’ 회원 8명 프로그램 기획 / 9월부터 일선 고교로 나가 성교육 / 임신·출산 중요성 일깨워 큰 효과 “요청 쇄도… 내년엔 중학교 확대”
“제 경험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3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 이서경씨는 얼마 전 ‘선생님’이 됐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청소년 성교육 강사’가 된 것이다. 한달 반 동안 벌써 7번이나 강단에 섰다. ‘성(性)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지금껏 듣던 성교육과는 다른 울림을 남긴다. 강의가 끝난 뒤 따로 연락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이씨는 “아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공부를 더 해서 청소년 성교육 전문 강사가 되고 싶다”며 고 말했다.

이른 나이에 출산을 경험한 미혼모들이 청소년 성교육 강사로 나섰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미혼모 지원 모임인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이하 인트리) 회원 8명이 현재 고등학교 성교육 강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 9월 서울 중화고등학교에서 한 미혼모 강사가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인트리는 올해 초 미혼모 당사자들이 일선 학교로 찾아가 청소년을 교육하는 ‘청소년 성교육 멘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미혼모들의 경험을 사회적 낙오로 낙인찍지 말고 교육자원으로 환원하자는 취지다. 서울시는 해당 사업을 협치의제사업으로 선정,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미혼모 당사자들이 청소년들에게 책임 있는 성에 대한 중요성, 무엇보다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사로 활동중인 이들은 올해 5∼7월 청소년성폭력상담소 ‘탁틴내일’에서 ‘아동·청소년 인권 및 성교육 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했으며, 9월 말부터 서울시내 고등학교로 나가 성교육을 하고 있다.

이들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중화고등학교에서 진행된 강의를 들은 한 여학생은 “기존 성교육에서는 ‘무조건 성관계는 안된다’는 식의 이야기만 들었는데 이번 교육을 들으니 비로소 성에 엄청난 책임감이 따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형숙 인트리 대표는 “미혼모는 대부분 이른 나이에 출산을 경험해 청소년기 성교육의 필요성과 출산·양육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로, 학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멘토”라며 “현실적인 강의이다보니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고, 다른 성교육 강사보다 더 가깝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강의를 통해 강사들도 성장한다. 강사들은 특히 자신감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강의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미혼모로서 주체적인 삶의 계획을 세워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시는 학교들의 섭외 요청이 많은만큼 내년에는 강사를 더 확보해 중학교까지 교육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상춘 서울시 가족담당관은 “미혼모 가정은 다양한 가족 형태 중 하나로 이들에 대한 인식개선과 자립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서울에 거주하는 미혼모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