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늘고 소득은 줄고… 사라지는 '아메리칸 드림' [세계는 지금]

미국은 ‘중산층 국가’로 불렸다. 직종과 관계없이 열심히 일해서 중산층에 진입하는 게 가장 흔한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그러나 경제 환경의 변화와 빈부 격차 등으로 아메리칸 드림이 사라져 가고 중산층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모든 주에서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중산층의 실질적인 소득이 줄어들고 있다. 중산층이 가처분 소득 부족으로 살림살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고용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이 지난달 3.9%를 기록했다.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이나 계약직, 프리랜서 일자리 급증, 첨단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중산층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에서 사라져 가는 중산층의 현주소를 심층 진단해 본다.


◆미국 중산층 현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산층을 그 나라 중간 소득의 3분의 2에서 2배 사이에 있는 계층이라고 규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에서 중산층은 1970년대 이후 줄곧 감소세를 보인다.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2016년도에 미국의 중산층 비율이 52%로 2011년의 51%에 비해 1%포인트가 늘어났다. 이 때문에 중산층 하락 현상이 멈췄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중산층 비율은 1971년에 61%, 1981년 59%, 1991년 56%, 2001년 54%, 2011년 51%, 2016년 52%로 집계됐다. 중산층의 비율이 1%포인트가 늘어났다고 해서 이것이 곧 중산층의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택 보유, 가처분 소득, 인플레이션, 중산층의 소속감, 교육 수준, 가계 빚, 구매력, 소비와 삶의 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미국의 중산층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스스로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사람의 숫자도 감소세를 보인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최신호에서 “미국의 현재 노동자가 부모 세대와 같은 소득 증가 현상을 경험할 수 없어 미국에서 중산층 진입 행진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포춘은 여론조사 업체인 해리스가 3500명의 미국 노동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 결과를 인용해 2017년에 노동자의 약 40%가 ‘그날 벌어 그날 쓰는’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는 2013년 조사 당시보다 4%포인트가 늘어난 수치이다. 미국인의 현재 평균 가계빚은 가계 소득의 26%에 달한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미국의 중산층이 신용카드빚과 대학 시절 학자금 융자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반면 건강 보험료 등 의료비용이 폭등하고 주거비가 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중산층은 대체로 자신의 주택에서 거주하면서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고, 자녀가 대학에 가면 학비를 지원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에서 중산층이 과거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포춘이 지적했다.

◆사라지는 중산층 일자리

미국에서 중산층이라는 말은 2차대전 직후에 등장했다. 2차대전 직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경제 성장과 임금 상승이 동시에 이뤄졌다. 그러나 1973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77% 증가했으나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임금 상승은 12.4%에 그쳤다고 경제정책연구소(EPI)가 밝혔다. 미국 경제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었고 이제 지식산업시대가 열렸다. 미국 산업의 변화 과정에서 노조운동이 퇴조하고, 자본 소득 비중이 커져 노동자의 경제력이 떨어졌으며 소득계층 이동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데 대학 등 고등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인이 고등학교 졸업 후에 숙련공으로 공장에서 일하면 중산층 생활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일자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미국의 커리어빌더(CareerBuilder)라는 회사가 실시한 조사에서 121종의 일자리가 2023년까지 지속해서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에서 중산층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58%에 달했다. 중산층 일자리는 대체로 시간당 임금이 23.05달러(약 2만5790원)가량이라고 이 회사가 밝혔다. 그 대표적인 직종이 출판업, 컴퓨터 관련 업종, 법률회사, 교도 행정직, 언론기관 등이다. 

임시직 경제(gig economy)의 출현도 중산층 감소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에서 정규직 근로자는 건강보험, 유급 휴가, 은퇴 후 연금 등이 보장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우버 운전자처럼 임시직 경제에 종사하는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포춘은 미국에서 임시직, 계약직 근로자가 1997년에는 8.3명당 1명꼴이었으나 이제 6명 중 1명꼴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임시직, 계약직, 프리랜서 근로자의 48%가 빈곤과 싸우고 있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보다 임금, 복지 등의 측면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중산층 살리기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중산층 감소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고지를 노리면서 중산층 소득세 10% 감세안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에 실시된 중간선거 전에 이 공약을 제시했고, 올해 관련 입법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중산층 감세안이 하원을 통과하기가 어렵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감세법안이 2017년 12월 의회를 통과했으나 이는 기업과 부자를 위한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민주당에서 차기 대권 도전을 선언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중산층 살리기’를 핵심 모토로 내세웠다. 워런 의원은 부자 증세를 통해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겠다고 공약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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