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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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문회 앞두고 ‘미스터 국보법’ 황교안, 사노맹 사건 소환

[이슈톡톡] 사노맹 사건이 무엇이기에 한국당이 조국 벼를까 / 미스터 국보법 황교안 "무장봉기 사회주의 혁명으로 국가 전복 꿈꾼 사건" / PD(민중민주) 계열이 축을 이룬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6공 최대 공안사건 /조국, 국보법 위반으로 1993년 6개월 옥살이 / 박노해 백태웅 은수미 등 주축 대부분 징역형 / 1999년 3월 1일 사면복권, 조국도 전과 벗어 / 박노해는 사진작가, 백태웅은 인권전문 하와이대 교수 / 조국 대학동기 은수미, 국회의원 거쳐 성남시장 / 8년 옥살이 남진현, 화가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놓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전면에 나서 ‘조국 법무부 장관 불가’를 선언했다. 황 대표는 1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후보자가 1993년 이른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에 앉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라는 말로 인사청문회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황 대표가 소환한 사노맹 사건은 무엇인지, 주역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 미스터 국보법 "사노맹, 사회주의 혁명 달성을 목표로 한 반국가 조직', 80년대 운동권과 일전 선포

 

황 대표는 검사 생활 대부분을 공안분야에서 근무했다. 공안검사들의 필독서라던 '국가보안법'을 집필한 대표적 공안검사로 '미스터 국보법'으로 불릴 만큼 국가보안법 권위자로 유명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문희상 의장 주최로 열린 초월회에서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런 그가 사노맹 사건에 대해 국보법을 명백히 위반한 국가문란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날 최고위원에서 황 대표는 "조국 지명자는 사노맹 사건으로 실형까지 선고받았던 사람이다. 사노맹은 어떤 단체인가.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혁명 달성을 목표로 폭발물을 만들고, 무기탈취 계획을 세우고,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만들었던 반국가 조직이었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그러지 않아도 우리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인데 이런 사람이 법무부장관이 되면 검찰이 과연 제대로 공정한 수사를 할 수가 있겠나"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국회를 무시하고 임명을 감행한다면 국민들께서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조국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기를 바란다"고 요구하면서 1980년대 운동권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 PD계열 조국, 1993년 사노맹사건으로 징역 1년에 집유 1년 6개월...1993년 3월 정부는 특사 및 복권

 

조 후보자는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이념체계 중 하나였던 PD(민중민주주의)와 이어지는 NDR(민족민주혁명)계열로 알려져 있다. 백태웅, 박노해 등 NDR주축이 사노맹을 결성했으며 조 후보자는 울산대에서 전임강사로 재직하던 1993년 사노맹 산하 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다.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풀려날 때까지 6개월여 수감생활을 했다. 

 

황 대표가 지적한 '선고'가 바로 이것이다. 조 후보자는 1999년 3월1일 김대중정부가 사노맹 관련자 전원에게 취한 특별사면 및 복권조치로 전과가 없어졌다. 

 

김대중정부는 사노맹 사건이 6공화국의 불순한 의도에 따른 기획된 공안사건으로 판단했지만 황 대표는 아직까지 '국보법 위반'임을 확신하고 있다. 

 

◆ 1989년 11월 백태웅, 박노해 등이 사노맹 조직...1991년 3월 박노해, 1992년 4월 백태웅 검거로 와해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 대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재 국가정보원)는 '남로당 이후 최대 규모의 사회주의 전위조직'이라고 알렸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사노맹은 1989년 11월  박노해(본명 박기평· 위 사진)등이 주축을 이뤄 결성했다.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필명으로 채택)와 백태웅은 1989년 2월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할 노동자당을 결성키로 의기투합, 같은해 11월 사노맹 결성을 공개 선언했다. 당시 백태웅은 가명 이정로(‘이것이 정통정치노선이다’의 준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사노맹은 최고지도부로 중앙위원회를 두고 조직위 ,편집위, 각 시도 지방위의 체제로 편성됐다. 조국 후보자가 연루됐던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을 비롯해 노동해방연구소, 사회주의학생운동연구소, 민주주의학생연맹은 사노맹의 산하조직. 

 

공안당국은 1989년 말부터 사노맹 추적에 나서 1991년 3월 박노해 중앙위원 검거에 이어 1992년 4월 백태웅 중앙위원장과 은수미(현 성남시장) 등 주요 조직원 30여명을 체포, 사실상 와해시켰다.

 

◆ 박노해 무기징역, 백태웅 징역 15년, 은수미 징역 6년형 등

 

박노해는 1991년 9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재판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돼 1991년 12월 2심에 이어 1992년 4월 대법원도 무기징역을 내렸다. 

 

백태웅(위 사진)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15년형으로 감형됐다. 무기징역이 15년형으로 감형된 예는 극히 드물어 당시 법조계에선 사실상 법원이 '죄없음' 판단한 것 아닌가라는 말이 나돌았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6년을 복역한 뒤 1997년 출소했다. 사노맹 중앙상임위원이었던 남진현은 8년간 옥살이했다.

 

◆ 사면 뒤 박노해 사진작가, 백태웅 교수, 은수미 정치인, 남진현은 화가...최고위직은 조국 

 

사노맹 관계자들은 1999년 3월 사면을 받아 정치·사회 활동에 걸림돌이 없어졌다. 박노해씨는 출소후 사진작가로 변신, 2014년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백태웅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법학박사학위 및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지금은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도소 인권' 등 유엔을 중심으로 인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 후보자와 대학동기로 친밀한 관계인 은 시장(위 사진)은 복학, 박사학위를 딴 뒤 19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남진현씨는 그림을 그리며 교도소 독방생활을 버틴 것을 발판삼아 그림 전시회까지 여는 등 화가의 길을 걷기도 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