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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KF-X… 동남아 시장, 유럽에 빼앗기나 [박수찬의 軍]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9(서울 ADEX 2019) 미디어데이가 열린 지난해 10월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KF-X 실물 모형이 계류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까지…. 세계 항공우주산업 시장에서 기반이 미약한 우리나라가 개발한 군용기가 그나마 잘 쓰이고 있는 지역이 동남아시아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 유럽 방산업체들이 동남아 시장에 뛰어들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나라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형 전투기(KF-X)를 비롯한 국산 군용기가 동남아에서 밀려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인도네시아 시장 쟁탈전 본격화하나

 

인도네시아는 KF-X 개발에 참여하는 국가로 전체 개발비 8조5000억원 중 20%에 해당하는 1조7000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나 2018년과 2019년 분담금을 내지 않았다.

 

방위사업청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지속적인 사업 참여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며 “분담금 납부가 조속히 이행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플랜 B’를 염두에 두는 듯한 모양새다. 프랑스 경제 전문매체 라 트리뷴은 최근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의 지난 11일 파리 방문은 프랑스제 무기 구매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계획됐다”고 보도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 열린 KF-X 상세설계검토 회의에서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매체는 최종 계약은 아직 맺어지지 않았다면서도 인도네시아가 닷소 라팔 전투기 48대, DCNS의 스콜펜급 잠수함 4척, 고윈드급(2500t) 초계함 2척 구매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프라보워 장관은 현지 매체에 “(무기를 팔려는) 프랑스의 희망사항”이라고 말했으나, 라팔 48대 구매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관심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위도도 대통령은 23일 국방부와 인도네시아군, 경찰 수뇌부가 모인 2020년 리더십 회의 직후 “프랑스 무기 구매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도 “프라보워 장관이 프랑스와 한국, 동유럽 국가 무기 구입에 대해 평가했다.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방산업계에서는 “물밑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반응이다. 인도네시아가 재정 문제로 KF-X 개발 분담금 지급을 미루는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의 물밑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다.

 

2002년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간 라팔은 세계적 항공전자업체인 탈레스가 개발한 전자장비와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장착했다. 프랑스와 미국, 유럽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항공무장 운용이 가능하다. 스칼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을 장착할 수 있어 전략적 타격능력도 갖췄다. 

 

프랑스 해군 라팔 전투기가 미 해군 핵추진항공모함 조지 부시호 비행갑판에 착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하지만 라팔의 해외 판매 실적은 좋지 않다. 프랑스가 2024년까지 180대를 구매하는 것 외에 이집트와 인도, 카타르가 약 100대를 도입했고 리비아와 시리아 등에서 실전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벨기에, 브라질, 싱가포르, 캐나다 등에서 고배를 마신 상태다. 

 

기존에 전투기를 개발한 회사가 새로 만든 전투기의 손익분기점은 300대 안팎이다. 라팔은 개발된 지 20여년이 흐른 상황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셈이다.

 

이는 프랑스 항공우주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래의 일감과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라팔 부품과 장비 생산에 참여한 협력업체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 협력업체 이탈은 프랑스 항공우주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 프랑스가 라팔의 인도네시아 판매에 적극적인 이유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프랑스는 수년전부터 인도네시아에 라팔 판매를 추진해왔다”며 “ KF-X보다 더 좋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는 관측이 현지에서 무성하다”고 전했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인도네시아에 제안하는 F-16V 인도네시아 버전. 록히드마틴 제공

미국과 러시아도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 나설 태세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미국 록히드마틴 F-16V 32대를 구매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록히드마틴은 이에 힘입어 추가 수주를 위해 올해 현지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2018년 2월 SU-35S 11대를 판매하기로 했으나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로 계약이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인도네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판매 시도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근본 대책 마련 서둘러야

 

라팔 등의 공세에 직면한 KF-X의 상황은 좋지 않다. 항공무장과 AESA 레이더의 취약점 때문이다. 

 

현재 KF-X는 2021년 상반기에 시제1호기를 출고하고 2022년 상반기부터 시험비행에 돌입, 2026년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하지만 KF-X의 항공무장은 라팔이나 F-16과 비교할 때 우위에 있지 못한 실정이다. 무장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정도다. 개발중인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2029년에야 전력화될 예정이지만 감항인증 등을 고려하면 2030년 이후 실전배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AESA 레이더가 개발되고 있으나 라팔의 RBE2-AA 레이더보다 우수한 성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0월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9)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KF-X 모형을 비롯한 국산 항공기가 공개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F-X 개발이 완료되면 인도네시아는 60대를 생산해서 배치한다. 스텔스를 제외하면 라팔이나 SU-35S보다 나을 게 별로 없는 KF-X를 2020년대 후반에 얻는 셈이다.

 

반면 라팔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규격을 적용한 서방제 무장은 대부분 사용이 가능하다. SU-35S도 러시아제 항공무장을 언제든 탑재할 수 있다. F-16V는 인도네시아가 F-16 30여대를 운용중이라 후속군수지원 등에서 유리하다. 

 

이 세 기종은 인도네시아가 주문하면 수년 안에 인도가 가능하다. KF-X보다 더 빠르고 쉽게 전력공백을 메울 수 있는 셈이다.

 

닷소나 록히드마틴 등이 인도네시아에 유리한 대금 지급 조건을 제시할 경우 KF-X 개발 참여를 놓고 내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인도네시아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기술이전을 약속한다면 더욱 불리해진다.

 

다른 동남아 국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전투기(LCA) 도입을 추진중인 말레이시아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구매를 고려하고 있으나, 중국-파키스탄이 합작한 JF-17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최신형인 JF-17 블록3는 AESA 레이더와 헬멧장착조준기 등을 갖춰 전투능력도 높아졌다. 가격이나 절충교역 등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는 중국의 특성을 감안하면 FA-50의 수주를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FA-50 12대를 운용중인 필리핀은 FA-50 추가 구매 대신 신형 전투기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데, 스웨덴 사브 그리펜이 후보로 거론된다. 필리핀은 지난해 1월 국산 수리온 헬기 대신 록히드마틴의 블랙호크 헬기를 구매한 바 있다. 록히드마틴은 수리온 10대를 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블랙호크 16대 제공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9)에 KF-X에 장착될 장거리 공대지 유도무기가 전시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리나라도 활발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한-동남아시아연합(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당시 KAI는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등 주요 정상들에게 FA-50을 소개했다. KAI는 다음달 열리는 싱가포르 에어쇼를 통해 동남아에 국산 항공기의 우수성을 알릴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 유럽 방산업체들의 공세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록히드마틴이나 닷소 등은 검증된 전투기 성능과 다양한 대금 지급 조건, 기술이전, 소속 국가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등에서 우리나라보다 우위에 있다. 

 

미국 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패한 이후 활로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동남아 시장까지 흔들린다면, 국내 항공우주산업은 해외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어렵다. 

 

전투기를 처음 개발한 회사가 해당 기종으로 이익을 얻으려면 400대 이상을 판매해야 한다. 하지만 KF-X의 확정 물량은 한국 공군 120대와 인도네시아 60대 뿐이다.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실전 경험이 있는 라팔도 해외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KF-X가 원래 계획대로 만들어져도 수출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네시아가 이탈한다면 KF-X의 대당 단가는 더욱 상승하고, KF-X 수출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T-50을 통해 확보한 항공우주산업 생태계 유지도 불가능하다.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마지막 ‘텃밭’인 동남아 시장을 지키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