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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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노리는 종교계 정당들… 이번엔 원내 입성 성공할까

총선 20여일 앞두고 관심 고조 / 원내진입 꾸준히 시도했지만 매번 고배 / 준연동형제 이번 선거선 가능성 높아져 / 전광훈 주도 기독자유통일당 대표적 / 비례대표 이외 지역구 후보도 낼 듯 / 불교연합당은 비례대표 5∼6석 목표 / 유권자들은 특정 종교의 정치개입 경계 / 대부분 종교인들도 탐탁지 않게 여겨

“정치권력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등이 오늘날 한국에서 기독교정당의 필요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1996년 3월1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한 종교 연구회 주최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주제는 ‘한국에 기독교정당이 필요하느냐’는 것. 프랑스, 독일 사례가 나오고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할 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론 신중론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다들 ‘시기상조’라고 본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서경석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 정치가들이 기독교적 가치보다는 표를 먼저 의식하는 현실에서 창당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10년쯤은 지나야 그 가능성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2004년 현실화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등 개신교계 일부 인사들이 모여 ‘정치권복음화’를 기치로 한국기독당을 창당한 것이다. 그해 17대 총선에서 1인 2표, 즉 정당 투표가 처음으로 시행된 것도 이를 추동한 요인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기독당은 정당 득표율 1.08%에 그치며 해산을 면치 못했다.

 

이후에도 여러 종교가 정치권 문을 두드렸으나 문턱을 넘진 못했다. 하지만 오는 21대 총선은 다를 수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무척 높아졌기 때문이다. 종교 정당, 특히 기독교정당이 한껏 기대감을 높이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종교계 시선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들 정당의 대표성에 대한 의구심에 더해 종교가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모습이 과연 옳으냐는 보다 본질적인 의문에서다.

 

◆“40명 안팎 후보 낼 것” “5∼6석 예상”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당등록현황을 보면, 정당 이름에 특정 종교가 들어간 곳은 ‘기독당’과 ‘기독자유통일당’, ‘불교연합당’ 등 3군데이다. 이 중 최근 주요인사 이탈 등 내홍에 휩싸여 당헌당규를 선관위에 미제출한 기독당을 제외한 두 정당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가 주도한 기독자유통일당은 미래통합당을 탈당한 이은재 의원이 합류 의사를 밝히면서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당 관계자는 “60명 넘는 지원자 중 25명 안팎을 비례대표로 선정할 것이며 지역구는 15명쯤 후보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독자유통일당은 지난 13일 21대 총선을 위한 정당 정책을 발표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법제화 반대, 낙태법 개정, 복음통일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기독자유통일당 제공

불교연합당은 비례대표 쪽에 주력한다. 이대마 당 대표는 통화에서 “이번 선거는 전과 다를 것”이라며 “비례대표 5∼6석 정도 확보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두 정당 모두 의석 확보 기준선인 정당 득표율 3%가 최우선 목표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선 18대 총선에서 ‘기독당’이 2.59%, 20대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이 2.63%의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개신교계 한 인사는 “유럽처럼 기독교정당이 뿌리내리는 것이 개신교계의 오랜 숙원”이라며 “정치 환경이 달라진 만큼 어떤 성과를 거둘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종교 정당에 표를 주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기독당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선 매우 흔한 정당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민주당(CDU)이나 기독사회당(CSU) 역시 종교색이 옅긴 해도 기본적으론 기독교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이슬람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자민당과 연립여당 역할을 하는 공명당이 불교를 기반으로 한다.

 

◆종교 정당 ‘우향우’엔 우려 시선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종교가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경계해 왔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 원칙 영향이 컸다. 독립운동에 나선 공을 인정받은 대종교 인사들이 초대 정부에서 고위 관료로 입각하거나 개신교계가 미군정·보수정권과의 두터운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동안 형목·군목제도 등에서 특혜를 누린 적은 있었으나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전통, 즉 종교의 정치개입, 정치의 종교개입을 경계하는 기조는 지금도 종교계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물론 종교인 과세 등 종교계 현안을 들어 종교 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종교 원리주의와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에 못지않다. 2004년 개신교계의 기독당 창당은 실은 미국의 팻 로버트슨 목사가 이끈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 등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세력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다. 이들이 공화당과 결합해 낙태와 동성간 결혼 반대, 이슬람에 대한 강경입장 등 이른바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정책’의 실천에 나서면서 “우리 땅에서도 한번 구현해보자”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것이다.

 

얼마 전 구속된 전광훈 목사와 그 지지자들 모습에서 볼 수 있듯 강경하고 보수적인 정책 노선과 특정 교리를 강조하는 듯한 모습은 우리 종교 정당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힌다. 불교연합당 이대마 대표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비슷한 행보를 밟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종교 정당의 대표성이나 필요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종교계 전반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종교계 인사들이 이들 정당과 ‘선’을 그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김길수 국태민안호국당 후보자는 5만표 넘는 득표 수로 눈길을 모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조계종 한 관계자는 “(불교연합당은) 저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당”이라며 “이에 대해 불교계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지만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라고 귀띔했다. 다수의 개신교 교단들도 일찌감치 한기총을 멀리하며 “우리와 다르다”고 구분지어 왔다. 사실상 일부 종파의 일탈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셈이다.

 

2002년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란 슬로건으로 16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김길수 국태민안호국당 후보자는 뚜렷한 비전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미지만 소비된 채 낙선했으나 5만표 넘는 득표수로 눈길을 모았다. 아무런 공직 경험도, 정치적 지원도 없이 특정 종교를 내세운 것이 선거전략의 전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많은 표를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희화화되는 사건이긴 하나 한편으론 종교 정당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례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이후 계속된 종교계의 정치 도전은 결과야 어찌 됐든 하나같이 우리 종교사에 의미가 작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엔 어떨까. 기독교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쳐지고 있는 이번 총선에 뚜렷한 족적이 남겨질 수 있을까. 그리 낙관적이진 않으나 한번 두고 볼 일이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