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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디지털 성범죄엔 반드시 ‘무관용’ 원칙 적용하길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n번방’ ‘박사방’ 사건은 부실한 법체계가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키웠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세계일보 기획시리즈 ‘디지털 성범죄 그들의 죗값’에 따르면 아동 성착취물 커뮤니티 ‘W2V’ 회원들이 부실한 양형기준을 틈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성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3.3%가 “디지털 아동 성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아동 성착취물 범죄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그제 아동·청소년 이용음란물 범죄 양형기준을 논의했다. 양형기준은 구속력이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41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없다. 미국은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의도된 성범죄’로 인정해 법정 최고형이 징역 20년이다. 한국은 벌금형이 고작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특정 개인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인격 살인이다. 피의자의 반성·자수 등 형량 감경 사유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 본지 조사에서도 “처벌을 원치 않거나, 촬영을 동의했다는 것이 감경 사유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72%에 달했다.

양형위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보다 높은 양형을 권고하기로 했다니 잘한 일이다.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일 경우 형량을 가중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사이버 범죄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요구이자 책무다. 언제, 어디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만인 앞에 평등한 게 법이라지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범죄만큼은 반드시 ‘무관용’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처벌 과정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갈 만한 허점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n번방 괴물을 막을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성범죄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중대범죄다. 그럼에도 사법당국은 그동안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대원칙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명백한 범죄를 두고 ‘일기장 그림’ ‘예술작품’ ‘호기심’이라는 입법부·사법부의 안이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관대한 형량에 피해를 당하고도 숨어 지내는 현실에 피눈물이 난다”는 성착취물 공유방 피해자의 편지가 더욱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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