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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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돌격대? 국가 생산성 높이는데 기여할 것" [여의도 초선 탐구]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초선 같지 않은 초선, ‘1.5선’들이 온다. 바로 국회에서 잔뼈가 굵은 보좌진 출신이다. 영입 인재들이 입당식부터 꽃다발 받아들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달리 보통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지만, 국회 곳곳을 꿰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워밍업을 모를 준비된 즉시 투입 전력이다. 특히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300명 중 초선은 절반이 넘는 151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당성이 높고 당사(史)를 꿰고 있는 이 일꾼들의 집단지성이 21대 국회 밑그림이 된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당선인은 그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인사다. 17대국회 때 이인영 의원 후보 선거캠프, 김근태 의원 비서로 정치권에 들어온 뒤, 임채정 의장실, 박원순 서울시, 문재인 청와대를 거쳐, 그야말로 바닥부터 기초를 다졌다. 민간에선 변호사로 활동하며, 입법부 행정부 법조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처음 선거를 도운 선배 이인영,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캠프에서 임종석 비서실장, 청와대에서 이낙연 총리까지, 여권 잠룡들과 모두 인연이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의 당선 후 가장 화제가 된 건 정작 화려한 경력이나 인맥보다, 13일간의 당선인사였다. 11일 국회에서 박 당선인을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당선인. 박상혁캠프 제공

◆수출역군 아버지와 수배당하던 아들

 

보통은 하루 이틀 하는 당선인사를 2주 동안 도는 그를 두고 지역구에선 “이런 의원은 처음”이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이런 당선인사를 한 이유를 묻자 “절박감과 책임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선거 다음 날인 4월 16일부터 29일까지 김포을 지역구 곳곳을 다녔다. 절박감만큼 당선 후 감사함이 컸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기간, ‘우리가 선거 때나 이렇게 인사를 받지, 정치인들이야 선거 때나 얼굴을 비친다’라고 하는 유권자들의 말을 들었다. 정치인의 선거용 형식적 인사가 사람들에게 상처와 불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당선 후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는 학생회장에 당선만 돼도 한총련 가입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수배자가 되던 시절, 한양대에서 학생회장을 했다. 졸업 후엔 국제정치를 전공하러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런 아들에게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지난 1월 출판기념회에 직접 편지를 써와 참석자들을 울렸다고 한다.

 

당시 그의 부친은 무대에 올라 “법관이 되길 바랐던 아들이 학생운동에 나섰고 총학생회장으로 수배에 쫓겨 일 년 넘게 집에 오지도 못했다. 추운 겨울날 구치소로 면회 가던 일은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어린 날 세운 뜻대로 초지일관 이웃과 힘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전형적인 산업화 세대다. 1970, 80년대 무역일꾼으로 아프리카까지 다니셨다. 집에는 수출 목표 달성 상공부 장관 표창 같은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신다. 정치는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의 갈등구도를 만들려 하지만, 일생을 바쳐 나라를 일군 아버지 세대와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바친 선배 세대의 정신을 어떻게 통합하고 발전지향적으로 새 길을 제시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하는 일상’ 만드는 것이 개혁”

 

집권 3년 차에도 지지율이 70%에 육박하는 대통령의 청와대 출신으로서 어깨가 으쓱할 법하지만 책임감이 무겁다고 했다. 그는 인수위 없이 시작된 청와대 초기 인사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하며 조각 업무를 했고 이후 총리실, 산업자원부 등을 맡아 일했다.

 

“자긍심이 있지만, 책임감이 무겁다.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강점을 의정활동에서도 잘 활용해야 한다. 이낙연의 엄격성, 박원순의 풍부한 아이디어, 이인영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전체를 아우르는 묵묵함, 임종석의 조정력을 배우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여당을 향해 소장파들이 사라지고 ‘청와대 돌격대’, ‘문돌이’(문재인 대통령), ‘코돌이’(코로나19 여론)들만 입성한다는 비아냥을 쏟아냈다. 민주당 안팎에서도 이런 우려가 없지 않았다. 박 당선인은 이에 대해 “시대 과제를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국민이 여당에 180석(현 177석)을 주신 의미는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국회가 그를 이끌어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에 기여하라는 것, 즉 일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여당이 탄생한 것을 두고 열린우리당 시절이 재현될 거란 전망에 대해 그는 “누구보다 당시의 과오를 경계하는 사람이 우리”라고 반박했다.

 

“17대 열린우리당 당시의 개혁시도와 좌절을 국회 현장에서 경험한 감각과 교훈을 갖고 있다. 당시 4대 개혁과제를 설정한 것이 정쟁의 전선을 만들어버렸다. 21대 국회에선 ‘개혁의 일상화’로 가야 한다.”

 

지난 원내대표 경선 토론회 때만 봐도 초선 당선인들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첫 질문이 언론개혁과 검찰개혁 방안이었다. 초선들이 민생경제 위기극복을 우선하겠다는 공식 노선과는 대비되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비쳤다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실업, 중소상공인 경제위기에서 생길 문제가 많다. 민생문제 해결이 국회의 우선 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완성하지 못한 과제를 완성하는 것도 우리 역할이다. 과제를 다 올려놓고 개혁을 일상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기간에도 ‘40대의 준비된 즉시 전력’임을 내세우며 주민들을 설득했다는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일하는 것이 곧 개혁’이라는 기조로 국회 생산성을 높이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진전이 있을 수 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