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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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그린뉴딜, 지구에 대한 예의

정부 뉴딜정책, 2009년에 머물러
녹색경제 전환위한 정책 보완을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는 ‘기후변화’가 총 여덟 번 등장한다. 주로 기후변화 위기, 기후변화 대응 등 단순 상황을 표현하는 것으로 쓰였다. 정부는 그린 뉴딜 추진배경으로 기후변화가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며, 한편으로 일자리와 신산업 창출 기회이고, 그린 경제 전환에 뒤처지면 경쟁우위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한다. 기후문제는 경제문제가 되었다. 정부의 인식이 맞다.

 

그런데 왜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정부에 발표를 그린이 아닐 ‘회색 뉴딜’로, 그린피스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을까. 지금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저탄소·녹색성장 정책을 발표했던 2009년이 아니라 2020년이기 때문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1.5도 특별보고서로 지구평균 기온 상승의 마지노선은 1.5도이며, 과학자들은 1.5도 안정화를 위한 탄소 예산은 8년 이내에 소진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전 세계적인 산불, 북극 해빙 면적 감소, 폭염과 한파, 태풍 등 이상기후가 심해졌다.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기후위기 비상시위가 뜨겁게 확산하는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다. 그 사이 재생에너지 기술은 발달하고, 단가는 떨어졌으며 탄소국경세, RE100, 탈석탄 금융 등 탄소규제가 제도화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 정책의 문제에 대한 인식은 2009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IPCC 1.5도 특별보고서에 대한 언급도, 기후 악당으로 지탄받는 한국의 책임에 대한 반성도, 시급한 에너지전환을 위한 전략적인 전기요금과 에너지세제 개편 같은 제도개선 방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가 문제를 깊이 인식했더라면 반드시 담겨야 할 내용들이 빠져 있는 것이다.

 

2050년 넷제로는 1.5도 안정화를 위한 기본조건으로 그린 뉴딜에는 2050년 넷제로 목표와 경로가 담겨야 한다. 넷제로 사회는 탈탄소 사회로의 경제사회 대전환 정책이다. 대전환은 고통을 수반한다. 탈석탄을 앞당겨야 하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의 추가 공항건설 계획이나 대규모 건설 사업은 좌초 인프라가 될 수 있어 계획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질서 있는 후퇴 없이 녹색산업 활성화만 강조해서는 탄소 중립은 어림없다.

 

전환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지역과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세계일보가 분석한 온실가스 감축 위험이 높은 지역이 당진, 보령, 태안 순이다. 석탄발전 밀집지역으로 일자리와 지역경제 대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EU가 그린 딜을 추진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하고, 그린 딜 전체 예산의 10%인 1000억유로를 좌초산업 노동자를 위해 조성하는 이유이다. 질서 있는 후퇴를 이야기하지 않고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다.

 

그린 뉴딜이 정부가 예산을 들여 녹색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으로 끝나면 딱 MB의 녹색성장정책에 머무르는 것이다. 재정투자에 더해 제도개선, 비재정분야 추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전환 분야에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전기요금제도 개편, 에너지세제 개편, 시장제도 개편이 같이 가야 한다. 모든 규제가 악이 아니라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유도하는 규제는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한다. 그린 뉴딜의 이행점검 체계는 온실가스 감축과 연동해야 하고, 올해 말 유엔에 제출 예정인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과 그린 뉴딜 정책을 연결해서 보완해 나가야 한다.

 

탈탄소 사회라는 대전환 정책을 2개월 만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부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듣는 일이다. 계획수립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노동자, 농민, 청소년, 시민사회, 지자체의 의견을 듣고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은 개입해야 한다. 이번에 실패하면 남아 있는 시간이 없기에 그린 뉴딜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그린 뉴딜이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슴 뛰는 대안이면 좋겠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