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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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수석침류

중국 진(晉)나라 때 손초라는 사대부가 친구인 왕제에게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漱石枕流·수석침류)”고 했다. 당시는 사대부들 사이에 노장사상이 유행하던 시기여서 손초도 죽림칠현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겠다는 생각을 털어놓은 것이다. 왕제가 웃으면서 ‘돌을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것(枕石漱流)’을 잘못 말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실수를 인정하기엔 손초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그는 “돌로 양치질한다는 건 내 이를 연마하겠다는 뜻이며, 물을 베개 삼는다는 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더러워진 귀를 씻겠다는 의미”라고 둘러댔다.

‘진서(晉書)’ 손초전(孫楚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수석침류는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꾸며대며 억지를 부리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견강부회, 아전인수 등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손초의 말을 절절히 체감하는 요즘이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황제 휴가’ 의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 탓이다. 추 장관은 자신이 관여했다는 야당 의원 주장에 “소설을 쓰시네”라고 비아냥댔지만 관련 정황과 증언이 잇따른다. 뒤늦게 입장문을 내고 “국민께 송구하다”고 하면서도 뭐가 송구한지는 밝히지 않았다. 검찰개혁 완수를 다짐한 건 생뚱맞다. “제가 보좌관에게 (군부대에) 전화를 시킨 사실이 없다”면서도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덩치만 컸지 체질은 허약한 여당도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한 중진 의원이 이번 의혹을 식당에서 김치찌개 재촉한 것에 비유하더니 원내대변인은 급기야 안중근 의사를 소환했다. “추 장관 아들이 안 의사의 ‘위국헌신(爲國獻身)’을 실천했다”는 놀라운 정신세계를 보여줬다. 국방장관은 추 장관 비호에 급급해 억지로 말을 꿰맞추려다 보니 혀가 꼬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했다. 현실은 그 화려한 수사와는 딴판이다. 잘못이 뻔히 보이는데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여권의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원재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