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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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豊臣秀吉 되겠다는 스가

스가, 삶의 목표 주군으로 변경
공신 히데나가 흠모하다 바꿔
임진왜란 주범 히데요시 거론
한국과의 미래서 불안 요소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원래 도요토미 히데나가(豊臣秀長·1540∼91)를 흠모했다. 지난해 9월 일본 격주간지 프레지던트에 ‘사람의 그릇을 키우는 책’이라는 주제로 쓴 기고문에서 애독서 3권 중 하나로 사카이야 다이치의 ‘도요토미 히데나가-어느 보좌관의 생애’도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삼국지’ 등과 함께 추천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한 해 전에 숨진 히데나가는 한반도와 악연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98)의 아버지 다른 동복동생으로 알려졌다. 형이 대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운 도요토미 정권 수립의 일등공신이다. 스가 총리는 히데나가에 대해 “농가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한 히데요시가 어떻게 대성공을 했느냐는 원래부터 관심이었다”며 “히데요시가 세상에 나온 뒤에는 역시 이런 확실한 버팀목(히데나가)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고 적었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그런데 스가 총리의 목표가 변경됐다. 삶의 목표를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바꾼 것이다. 지난 10일 지방의 자민당 당원과의 온라인 회의에서 “도요토미 히데나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히데요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이었던 오다 노부나가(1534∼82),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와 함께 일본 전국시대의 천하인으로 불린다. 농민 출신으로 여러 현안의 문제점을 꿰뚫고 개혁하는 자세로 수완을 발휘해 주군 오다 노부나가의 사후 일본을 손에 넣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소위 세습 후계자가 아니라 자수성가해 권력을 잡았다는 점에서 스가 총리는 본인과의 공통점을 찾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렇게 존경할 만한 인물일까. 포르투갈의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로 일본에 있던 루이 프로이스는 ‘일본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그는 자신의 권력, 영지, 재산이 증가하면서 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행과 심술을 부렸다. 가신뿐 아니라 외부인에게도 극도로 오만하고 미움을 받는 사람이기도 해 그에 대해 증오를 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특히 임진왜란을 통해 한반도와는 악연을 맺었다. 명을 정복하기 위해 길을 빌리겠다는 정명가도의 망상 아래 조선, 중국, 일본의 민중을 전화에 밀어넣었다. 300년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한 그 후예들은 아시아 민중을 다시 침략과 전쟁의 구덩이로 등 떠밀었다가 원자폭탄 2발을 맞고서야 광란을 멈추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퇴임 후 사흘 만에 군국주의의 성지이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시아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할 수 없는 만행이다.

 

스가 내각이 일본 우익의 구심점인 일본회의 등 우익 3단체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소위 야스쿠니파로 구성된 점도 앞날을 불안하게 한다. 스가 총리와 아베 전 총리는 아베 정권 시절부터 과거사 문제에 대한 내각의 통일된 인식을 중시했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강제지배와 침략을 부인하는 역사수정주의자인지 여부가 각료 선발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스가 총리가 목표로 하기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말로가 불행했다. 본인은 천수를 누렸는지 모르겠으나, 56세에 얻었던 아들은 부친의 업보 속에서 22세 때 근거지 오사카성에서 도쿠가와군에 포위돼 자진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스가 총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니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목표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으로 단절됐던 조·일 국교를 회복했다. 조·일 간 평화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예, 정한론자들이 일본 정치의 주역을 담당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역대 도쿠가와 정권이 300년 가까운 조선과의 평화 속에 국내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는 점은 스가 정권뿐 아니라 앞으로 일본의 각 정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청중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