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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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오백리길 맑은 물빛 따라 여름이 익어가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입력 : 2021-07-10 08:00:00
수정 : 2021-07-09 09: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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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여행지’ 대청호 오백리길 7구간 부소담악·수생식물학습원 하이라이트/계족산 황톳길 맨발산행···산성 오르면 대청호 파노라마/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 4구간 호반낭만길 명상정원도 인기

옥천 수생식물학습원 전경

맛있게 익어가는 장이 가득 담긴 시골집 장독대.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놓는 고향집 아버지의 넉넉한 인심.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게 쌓은 돌담. 장터가 서는 날엔 손님을 부르고 물건 값도 흥정하느라 시끌벅적하면서도 흥이 넘치곤 했지. 하지만 이런 정겨운 풍경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댐이 생기면서 마을이 흔적조차 없이 수장됐고 실향민들은 이제 어렴풋이 기억에만 존재하는 고향 마을 풍경을 그리워할 뿐이다. 슬픈 사연을 가득 안고 있는 대청호. 그래도 자연의 복원력은 대단하다. 마을을 잃게 만든 대가로 후대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해 실향민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부소담악 추소정
추소정에서 본 부소담악

#추소정에 올라 ‘소금강’ 부소담악을 보다

 

물 위로 솟아 오른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이 에메랄드빛 물을 가르며 끝없이 이어진다. 그 위를 20대 청년의 풍성한 머리숱처럼 가득 채운 울창한 소나무숲. 한눈에 보아도 자연이 빚은 걸작이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추소정에 오르자, 푸른 하늘과 구름을 그대로 담고 물 위에 둥실 떠오른 부소담악 절벽이 아찔하게 펼쳐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학자 우암 송시열이 작은 금강산이라 극찬했을 정도이니 부소담악은 대청호 오백리길 7구간의 하이라이트다. 부소담악은 호수 위에 떠 있는 병풍바위라는 뜻. 대청호 조성으로 마을과 산허리가 잠기면서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것 같은 지금의 모습이 됐다. 오랫동안 물에 잠긴 곳은 나무와 풀이 모두 죽으면서 기암괴석의 맨살을 드러냈는데 대청호 수위가 낮아질 때 소금강의 진풍경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론 송시열 시대의 부소담악은 풍경이 많이 달랐으리라. 대청호가 생기기 전에는 금강이 흘렀고 그때는 물이 낮았으니 훨씬 더 높은 수직절벽이 펼쳐진 풍경을 상상해 본다.

부소담악 산책로
커피아뜰리에서 본 부소담악

주차장이 있는 잔디광장에서 추소정까지 600m가량 산책로가 이어진다. 나무를 깎아 만든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장승들이 여행자를 반겨 심심하지 않다. 산책로는 아찔한 절벽을 따라 이어지며 흰구름 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 아래 소나무숲이 펼쳐져 천천히 걸으며 힐링하기 좋다. 부소담악은 지형이 아주 독특하다. 추소리 웃골과 양지말골을 좌우에 거느리고 응극재골에서 700m를 길게 뻗어있는데, 하늘에서 보면 마치 용이 대청호 물 위를 길게 미끄러지면서 나아가는 형상이란다. 추소정에 오르면 부소담악의 이런 풍경이 잘 보인다. 추소정에서 부소담악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70m가량의 산책길이 아주 아름답다. 하지만 낭떠러지 절벽이 위험해 길은 중간에서 멈춘다.

부소담악 드론 풍경
부소담악 드론 풍경

부소담악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환산로를 따라 남쪽으로 차로 3분 정도만 가면 커피아뜰리에를 만나는데, 이 건물 옥상에 오르면 부소담악 전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더 높은 곳에서 보려면 추소리 절골에 오르면 된다. 배를 타고 부소담악 맞은편 미르정원에서 조망하는 방법도 있지만 정원 입장료 1만원이 좀 부담스럽다.

수생식물학습원 접시꽃
수생식물학습원과 대청호

대청호 오백리길 7구간은 16㎞에 달하며 6시간이 걸린다. 이 코스 초반에 ‘천상의 정원’이 숨어있다. 옥천군 군북면 방아실길 수생식물학습원이다. ‘좁은문’을 통과하면 수련이 활짝 핀 ‘좁은길’이 이어지고 그 길 끝에서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빨간 접시꽃과 금계국 등 여름 야생화가 활짝 피어 여행자를 반긴다. 바람이 지나는 ‘천상의 바람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바람결에 실려오는 꽃과 나무들의 소곤거림을 즐긴다. 바람길 끝 액자 포토존의 벤치에 앉았다. 대청호와 산자락, 화사한 금계국이 어우러지는 근사한 풍경이 한 컷에 담기니 셔터를 아무리 눌러도 아깝지 않다. 바람보다 앞서가지 않으며 느리게, 느리게 ‘꽃산 아래 벼랑 산책로’를 따라 가면 백년초 가득한 전망대를 만난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대청호와 하늘을 향해 휘어지며 가지를 펼친 수령 120년의 소나무‘암송’이 아주 신기하다. 그 너머로 기암괴석 절벽이 펼쳐진 풍경이 부소담악 못지않다. 절벽 위에 앉은 정자와 유럽풍 고성까지 어우러져 수채화를 완성한다.

대청호 오백리길 포토존
명상정원 산책로

#대청호 오백리길 물빛 따라 여름이 익어가네

 

대청호는 충북 청주시·옥천군·보은군과 대전시에 걸쳐있는 인공호수로 저수면적 72.8㎢, 호수 길이 80㎞, 저수량 15억t으로 저수량 기준 소양호, 충주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다. 1980년 대청호 완공으로 86개 마을이 수몰됐고 4075가구 2만6000명이 고향을 잃었다. 세월이 지나 호수 위 200∼300m 높이로 수목이 빽빽한 산자락이 펼쳐지는 수려한 풍경 덕분에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도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언택트로 힐링할 수 있는 여행지로 대청호 오백리길을 강력 추천한다. 호수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대청호를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모두 250km로, 본선 21구간과 지선 5개 구간으로 이뤄졌다.

명상정원 뜬섬
명상정원 뜬섬

4구간 호반낭만길을 따라간다. 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인 명상정원 덕분에 인기가 높은 곳이다. 마산동 쉼터 윗말뫼 주차장에서 아기자기한 데크길을 따라가면 된다. 바다같은 모래사장이 대청호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고 푸른 하늘과 구름, 소나무가 물에 담기는 신비로운 풍경이 명상정원까지 760m가량 이어진다. 데크길을 따라 가도 되고 길을 벗어나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걸으면 대청호가 손에 닿는다.

명상정원 포토존
명상정원 장독대

‘대청호 오백리길‘이라 적힌 커다란 하얀 표지판을 지나면 명상정원 입구로 항아리, 정자, 담장이 등장한다. 수몰된 고향 마을의 향수를 그리며 만들었단다. 그 너머에서 영화 속 풍경을 만난다. 하얀 모래사장과 갈수기에만 길이 등장하는 뜬섬, 운치있는 나무 덕분에 누가 서 있더라도 영화 속 주인공이 돼 버린다. 현빈, 장동건이 출연한 좀비 영화 ‘창궐’을 비롯해 ‘역린’ ‘7년의 밤’ ‘트루픽션’ ‘나의 절친 악당들’ 등 많은 영화들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알겠다.

계족산 황톳길
계족산 숲속야외무대

#계족산성 오솔길엔 여름 개망초 유혹하고

 

계족산 황톳길은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힐링하는 곳으로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가 추천하는 여행지다. 장동삼림욕장에서 황톳길이 무려 14km나 이어진다. 어머니 품 같은 푹신푹신하고 서늘한 황톳길을 걸으며 해발 300m의 질 좋은 산소를 폐속 깊이 불어넣는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맑은 공기로 씻기는 듯한 상쾌함이 압권이다. 숲속음악회장에서 길이 갈린다. 왼쪽은 황톳길이 나 있고 오른쪽은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어느 쪽으로 가도 길은 계족산성 오르는 길 입구에서 만난다.

계족산성
계족산성 산책로
계족산성 남문터

계족산성 가는 길은 더욱 가팔라 30여분을 허벅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올라야 한다. 하지만 정상에 서면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돌로 쌓은 웅장한 산성이 펼쳐지고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을 하얗게 뒤덮은 개망초 군락이 장관이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쌓아올린 산성은 해발고도 400m 계족산 정상 둘레를 따라 외벽 높이 약 7m로 쌓았다. 성벽에 서니 대전 시내와 대청호 풍경이 발아래 아찔하게 펼쳐진다. 백제 부흥군과 신라의 김유신·품일 정벌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역사적인 장소다. 건물터에서 고려시대의 기와조각, 조선시대의 자기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다. 고려·조선시대까지도 전략적인 요충지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노고산성 정상
노고산성 ‘소원의 종’

체력이 남았다면 대청호 오백리길 2구간 찬샘마을길의 노고산성 정상에도 올라 보시길.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져 윤곽만 희미하게 남았지만 전망대서 서면 대청호 풍경이 파노라마로 다가오며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전망대에 설치된 ‘소원의 종’을 치면 산과 호수를 따라 오래 종소리의 여운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