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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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만난 ‘위안부’ 할머니… 한 맺힌 ‘영원한 증언’

여가부, 프로젝트 시범 전시

홀로그램 이옥선·이용수 할머니에 질문
준비된 1000여개 영상 중 적절한 답 골라
대화 속에서 생생한 고통·분노 느끼게 해
13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곤자가플라자 로비에 마련된 ‘영원한 증언’ 전시장에서 김규원 학생(국제한국학과 4학년)이 스크린 속 이옥선(오른쪽), 이용수(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대화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식모를 하는데 주인이 심부름을 보냈어. 갔다 오는 길에 남자 2명이 길을 턱 막아요. 어디 가냐 물으니 팔을 쥐고 무조건 끌고 갔어.”

 

수백, 수천번은 더 했을 이야기를 또다시 전하고 있는 할머니의 손가락이 떨렸다. 떠올리기 힘든 기억에 눈을 질끈 감는 모습도 보였다. 아흔넷. 고령인 이옥선 할머니의 발음은 정확하진 않았지만 그 뜻은 무엇보다 또렷했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위안부’ 간판을 안 내놓을라 했어요. 그런데 너무 억울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나쁜 짓 한 걸 말해서 고치게 해야겠다고 용기를 냈지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언제 어디서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3일 여성가족부는 오는 11월까지 이옥선·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를 시범 전시한다고 밝혔다. 관람자가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인공지능(AI) 기술이 할머니들이 미리 찍어놓은 1000여개의 영상 중 적절한 답을 골라 보여준다. 관람자들은 할머니와 실제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현재 서울 서강대와 대구 희움역사관에서 시범 서비스가 진행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14일)을 맞아 지난 10일 서강대에서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눠봤다. 할머니들은 화면 속에 있지만 실제 모습과 비슷한 크기에 홀로그램 기법이 활용돼 실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들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힘들었던 ‘위안소’ 생활, 그리고 지금의 일상까지 생생하게 들려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이옥선 할머니는 “지금도 남이 글 쓰는 걸 보면 참 부럽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면서 밝은 표정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글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차마 실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묻기 어려운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위안소로 끌려가던 날에 관해 묻자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안 간다고 하니까 주먹과 군홧발로 ‘죽이겠다’며 때렸어요. 아프니까 정신없이 그냥 끌려갔어.” 이옥선 할머니는 “하루에 주먹밥 하나만 주고 (군인들을 상대)하라고 하니까 이러다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도망가려고 새벽에 일어나 주위를 다 돌았는데 쥐구멍 하나 없었다”고 회상했다.

 

증언은 할머니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 얘기(피해 사실)를 하면 참 피가 끓는다”면서 “증언하면서 울지 말자고 맹세를 했지만 얘기할 때마다 상처가 너무 크고 기억이 되살아나서 괴롭다”고 했다. 중간중간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묻히지 않도록 용기를 낸다는 할머니는 “이렇게 증언이 남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와 서강대 영원한 증언팀은 이 프로젝트가 할머니들의 증언을 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참상을 좀 더 깊숙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화를 마치며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자 이용수 할머니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우리 대화해서 즐거웠습니다. 잘 가세요.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건네봤다. “할머니, 언제까지 여기에 계실 거에요?” “내가 여 남아서, 영원히 증언하고 있을게.”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이제 14명. 언젠가 할머니들이 모두 떠나는 날에도 증언은 계속될 것이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