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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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R 헤드셋 쓰면 가상세계 활짝… ‘메타버스’가 뜬다 [세계는 지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선점 경쟁

초월 의미 ‘메타’·우주 뜻 ‘유니버스’ 합성어
현실 활동도 가능… ‘비대면 시대’ 장점 많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 수요 확실

저커버그 “페이스북, 5년 후 메타버스 기업”
MS·구글도 플랫폼 개발 등 사업 추진 중

글로벌 빅테크 기업 SNS 광고 수익 포화
경제적 잠재력 무궁… ‘미래 먹거리’로 제격
2024년 AR·VR시장 313조… 2021년의 9배↑

“기업, 마케팅 수단으로만 소비… 개념 모호”
기기 개발 아직도 초기 수준인 것도 발목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묘사된 메타버스 접속 장면. 뉴욕타임스 캡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가상세계 ’오아시스’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자동차경주와 카지노를 즐기거나,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며 데이트도 할 수 있다. 오아시스의 재산으로 실제 쇼핑도 가능하다. 가상세계 속 촉감을 그대로 전달하는 ‘햅틱수트’를 오아시스에서 주문하면 집 앞으로 배송돼 온다. 돈이 부족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오아시스 속 은행이 돈도 빌려준다. 다만 갚지 못하면 ‘가상 노역장’으로 끌려가야 한다.

이용자는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고 접속만 하면 된다. 오아시스 속 내 모습은 모두 철저히 다른 사람으로 꾸밀 수 있다. 나이부터 인종이나 성별까지도. 누구든 될 수 있는 셈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최근 주목받는 ‘메타버스’(Metaverse: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의 이상향을 거의 정확히 그리고 있다. 인터넷과 현실 세계의 활동이 모두 가능하다는 특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더욱 극적인 장점으로 부각됐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와 함께한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의 수요도 확실하다.

가능성을 본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은 일제히 메타버스 시장 참여를 위해 뛰어들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5년 후 페이스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아닌 메타버스 기업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도 메타버스 사업 계획을 제시했다. 네이버의 ‘제페토’는 대표적인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마케팅 수단으로만 소비할 뿐,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메타버스란 무엇이고,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메타버스 시장 선점을 위해 어떤 전략을 펴고 있을까.

◆모니터 앞이 아닌, 인터넷 속으로

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가상세계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소설은 낮에는 피자를 배달하고, 밤에는 메타버스라는 온라인 세계에서 슈퍼히어로로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메타버스는 초월이란 의미의 ‘메타’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를 합성한 말이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온라인 세계란 뜻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내세우는 메타버스도 소설 속 세계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세상에서 포괄적인 활동이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제시한 비전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은 모니터를 통해 콘텐츠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커버그 CEO는 이를 ‘체화된 인터넷’이라고 표현했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사업에서 가장 앞선 기업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VR 기기 개발업체 ‘오큘러스’를 지난 2014년 20억달러(약 2조3380억원)를 들여 인수했다. 당시 페이스북 투자 중 최고액이었다. 2019년부터는 오큘러스의 VR 헤드셋 전용 플랫폼 ‘페이스북 호라이즌’을 비공개 테스트하고 있다. 가상현실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생성해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를 함께 보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소셜 플랫폼이다. 가상 일터 ‘인피니티 오피스’도 개발 중이다.

저커버그 CEO는 미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 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장소에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며 “춤을 추거나 함께 운동 강습을 받는 등,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웹페이지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MS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개발 중이다. MS는 증강현실(AR) 헤드셋 ‘홀로렌즈’를 2015년부터 개발해왔다. 최근에는 VR/AR 플랫폼 ‘MS 메시(Mesh)’를 공개하고 “기업용 메타버스”라고 명명했다. 홀로렌즈를 이용해 타인과 대화하거나 업무를 공유할 수 있어, 향후 확장성이 주목받고 있다. 구글도 AR 기기 ‘구글 글래스’와 ‘구글 어스’의 VR 체험 서비스 등 메타버스 사업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313조원 규모 ‘미래 먹거리‘

빅테크 기업들이 메타버스에 뛰어드는 이유는 SNS의 광고 수익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2분기 매출이 290억8000만달러(약 33조5000억원)를 기록하면서 시장 기대치(278억1000만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업체 측은 ”앞으로 매출 증가율이 순차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전망을 부정적으로 봤다. 페이스북도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단계에 왔다는 의미다.

반면 메타버스의 경제적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는 오는 2024년 AR·VR 시장 규모가 2690억달러(약 31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307억달러)보다 9배 가까이 성장한 규모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메타버스가 온라인 상호작용의 다음 개척지란 점에 마케팅 전문가들은 주목해야 한다”며 “온라인 마케팅 환경에 혁명을 일으킨 SNS처럼, 메타버스도 혁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별화된 경험 줄 수 있을까

기업들이 메타버스 사업 진출을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지만, 개념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콘텐츠에 메타버스라는 이름만 덧씌우고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비영리 기술연구단체 미래가속화연구재단(ASF)은 2007년 보고서를 통해 메타버스를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를 겹치는 ‘AR’ △일상을 디지털 공간에 직접 기록하는 ‘라이프로깅‘ △현실이 디지털 세계에 사실적으로 반영된 ‘거울세계’ △그래픽으로 완전히 구현된 ‘가상세계’ 4가지로 구분했다.

뒤집어 말하면 ‘포켓몬 GO’ 등의 AR 게임이나 일상을 디지털에 기록하는 SNS, 웹 브라우저에 지구가 담긴 ‘구글 어스’, 수많은 게임 속 세계 등 우리 생활 속에 메타버스가 이미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에 빅테크 기업이 어떻게 메타버스를 통해 기존 SNS나 게임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5년 내 메타버스 기업이 되겠다’는 페이스북도 아직은 명확한 해답을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CNN 비즈니스에 따르면 저커버그 CEO는 실적 발표회에서 광고가 주요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블룸버그는 미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페이스북에 향후 메타버스 투자 방향과 가상환경에서 가질 통제력에 대해 질문했지만, 모호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브 웨너 페이스북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메타버스에) 수십억달러를 쓰고 있으며, 메타버스가 성공하면 돈을 벌 것”이라고만 답했다.

미국 매체 ‘인사이더’는 “메타버스의 의미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담론을 장악한 것”이라면서 “이 개념은 이미 게임과 공상과학(SF) 소설 영역에 한동안 존재해 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를 신제품 마케팅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메타버스 플랫폼의 핵심인 VR·AR 기기 개발 단계가 아직 초기 수준인 점도 발목을 잡는다. 구글이 자체 개발한 ‘구글 글래스’는 실패 판정을 받았다. 구글은 유사 제품을 만드는 업체 ‘노스’를 인수해 기기 개발에 재도전 중이다. 홀로렌즈는 개발 4년 만인 2019년 시판에 들어갔지만, 가격이 3500달러(약 409만원)에 달해 보급이 더디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는 꾸준히 개선형을 내놓고 있으나, 저커버그 CEO조차도 “여전히 투박하고 무겁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