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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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프면 쉴 권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아프면 쉴 권리’가 우리 사회에 성큼 다가왔다. 전염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아프면 집에서 쉬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한 것이다. 이에 맞추어 정부는 2022년부터 ‘한국형 상병수당’ 제도 시범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상병수당은 ‘아프면 쉴 권리’를 경제적 측면에서 본 것이다. 근로소득의 부재도 문제지만 더하여 장기간 휴직해야 하는 경우 돌아갈 직장이 있어야 마음 편히 쉴 수 있다. ‘병가’가 갖는 의미는 유급 여부와 관계없이 향후 돌아가서 일할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플 때 마음 놓고 쉬기 위해서는 상병수당의 경제적 지원과 병가를 통한 직장 복귀 권리가 필요하다.

원종욱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몸이 아파도 출근하는 이유의 60%가 경제적인 이유였다. 미국은 연방법에 따라 50인 이상 사업장은 근로자가 요청하면 12주간 병가를 주어야 한다. 물론 무급이 원칙이지만 12주 이내에는 언제든지 돌아갈 권리가 보장돼 있는 것이다. 미국 50인 이상 기업의 80%가 민간보험을 통해 병가 기간 중 급여를 지급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유급 병가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법으로 병가를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근로기준법에서 병가를 규정하지 않고 이를 취업규칙에 위임했는데, 한국의 493개 민간 기업을 조사한 결과 유급병가를 제공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하고, 그나마 병가가 취업규칙에 포함돼 있는 곳도 42%에 불과했다.

병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급인 경우 근로자들은 수입이 없기 때문에 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재난과 같이 갑작스럽고 과도한 의료비의 지출이 빈곤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수입이 없어진 것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만약 근로자가 중병에 걸려 장기간 휴직할 수밖에 없고 휴직기간 중 급여를 받을 수 없다면, 결국 병을 이유로 퇴직해서 고용보험의 상병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제도 자체가 고용 안정성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병가와 상병급여가 보장되지 못한 많은 근로자들은 ‘아파도 출근’할 수밖에 없다. 아픈데도 출근하는 것을 ‘프리젠티즘’이라고 하는데, 이는 노동 생산성을 저해하고 사고의 위험을 높인다. 특히 요즘과 같은 팬데믹 시대에는 프리젠티즘이 감염 전파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한국에서 아플 때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무원은 1년에 60일 이내의 병가에 대해 100% 급여가 보장되고, 장기 요양이 필요하면 최대 2년까지 봉급의 70%를 받으며 휴직할 수 있다. 또한 대기업은 대부분 3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유급 병가를 보장하고 있다. 결국 많은 중소기업 근로자와 소규모 자영업자들만 ‘아프면 쉴 권리’가 없는 것이다. ‘아프면 쉴 권리’는 국민이 가져야 할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OECD 국가 중 한국과 미국만이 상병수당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상병수당은 아플 때 쉬는 근로자의 경제적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상병수당’과 더불어 ‘병가’도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 비로소 대다수의 국민이 아플 때 걱정 없이 쉴 수 있을 것이다.


원종욱 연세대 보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