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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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폐막식 하자”… 축제 아닌 반중·분노의 장 된 올림픽 [뉴스+]

韓 남자 1000m 쇼트트랙 경기서 잇단 실격 판정
국민 공분… 대선후보 등 정계서도 비판 쏟아내
헝가리·독일·일본·노르웨이 등도 기준 의문 제기
‘화합의 장’ 아닌 세계 반중 정서 확산 계기될 수도
지난 7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남자 1000m 경기에 나간 최민정(왼쪽부터), 박장혁, 황대헌, 이준서. 최민정·박장혁은 넘어지고 황대헌, 이준서는 레인 변경 위반으로 실격됐다. 뉴스1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편파판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중국이 세계인을 초청해놓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며 자기들 이익만을 편파적으로 추구한다면, 이번 동계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가 아니라 중국만의 초라한 집안 잔치로 끝나고 말 것”(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올림픽 정신이 훼손되고 있다”(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의 별명이 무색하게 됐다. 개막 5일 차를 맞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연이은 논란으로 ‘세계인의 분노의 장’이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잇따라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처리를 당하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는 가운데 8일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이재명 후보와 안철수 후보, 심상정 후보 등 대선후보들은 잇따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편파판정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올림픽 정신은 어디에 가고 이런 편파적인 판정만 남은 것인가”라면서 “개최국에 유리한 것을 넘어 개최국 독식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89개국이 참가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중국 체육대회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공정한 심판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도 “올림픽 정신 실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경기에서 한국팀 남자 선수들은 1000m 준준결승과 준결승에서 심판진의 공정하지 못한 실격처리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들의 심판을 본 피터 워스(오른쪽) 주심이 황대헌의 경기 후 비디오 레프리와 판정을 두고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경기 중계에 참여한 쇼트트랙 해설위원들도 분노를 쏟아냈다. 이정수 KBS 해설위원은 “한국과 다른 나라 선수들은 내일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서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올림픽 같지 않은 올림픽을 치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안상미 MBC 해설위원은 “우리를 왜 들러리 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본인들끼리 하고 금·은·동을 가져가면 될 텐데”라고 했고 박승희 SBS 해설위원도 “(실격 판정을 받은) 황대헌 선수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중국 선수들을 부딪치게 한 것도 없었다”며 “중계를 안 하고 싶더라. 내가 선수 때 겪었던 것을 후배들도 계속 겪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고 말했다.

 

판정 공정성에 의구심을 가진 선수들의 항의를 국제빙상연맹(ISU)이 받아들이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은 더 커졌다. 우리 대표팀 황대헌 선수와 마찬가지로 석연찮게 실격 판정을 받은 헝가리 대표팀의 사올린 샨도르 류 선수 등의 판정 항의에 연맹은 “연맹 규정에 근거해 심판은 해당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경기 규칙 위반에 따른 실격 여부에 대한 심판의 판정에는 항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맞서 우리 선수단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도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준결승 4조 경기에서 중국 리원룽이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을 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준결승 1조 경기에서 넘어진 박장혁이 중국 우다징의 스케이트 날에 손을 다치고 있다. 뉴스1

베이징 올림픽과 중국을 향한 의문과 비판이 우리나라에서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종목에서 의아한 실격 혹은 미완주 사태가 속출하며 국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날 치러진 스키점프 남녀 혼성 단체전에서는 독일·일본·노르웨이·오스트리아 등 4개국 5명의 선수가 복장 규정 위반으로 무더기 실격 판정을 받았다. 공기 저항의 영향이 큰 스키점프는 복장 규제가 엄격한 종목이지만 국제 경기 복장 기준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프로 선수들이 이처럼 대규모로 실격처리 당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실격당한 노르웨이 선수가 “단체전을 앞두고 심판진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유니폼 치수를 쟀다. 평소와 다른 동작으로 서 있게 요구했다”고 주장하면서 외신에서도 측정 공정성 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다카나시 선수의 복장에서 허벅지 부분이 허용치보다 2㎝ 크다는 이유로 실격됐다”고 비판했고 실격 판정 후 눈물을 흘리는 선수의 사진이 활발히 공유되며 포털사이트와 SNS에도 IOC와 중국을 비판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독일과 노르웨이 언론도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고 SNS에서 관련 검색어가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국립 스키점프센터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혼성 단체전에서 다카나시 사라(일본)가 '복장 규정 위반'으로 실격당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자커우 AFP=연합뉴스

국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편파판정에 대한 분노가 반중(反中) 감정 확산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날 경기 이후 온라인에는 “그냥 오늘 폐막식을 하고 올림픽을 끝내자”, “중국이 개막식에서부터 한복과 한국 문화를 훔치더니 메달도 훔쳐갔다”,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의 집안 잔치를 보는 것 같다”는 등의 비판이 쇄도했다. ‘편파판정’ 등의 단어와 함께 중국을 비난하는 원색적인 욕설들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순위를 점령하기도 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