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콩인 40대 여성 A씨는 최근 베이징에 가족 여행을 왔다가 중국인 여행 가이드, 운전기사와 얼굴을 붉혔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사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다. A씨는 “송환법을 무리하게 추진하려 했다. 송환법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다”며 홍콩 정부를 비판했다. 가이드와 기사는 “결국 홍콩 사람을 보호하려는 법인데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어색해졌고, 기대했던 가족 여행도 열기가 식었다.
#2 지난 18일 오후 2시(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11주차 송환법 반대 시위가 개최됐다. 홍콩에서 10분 거리의 선전에서 장갑차와 물대포로 무장한 무장경찰 수만명이 집결해 무력시위를 벌였지만, 170만명의 시민이 모여 송환법 완전 철폐,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시위대 석방·불기소, 경찰 강경 진압 진상 조사,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등을 주장했다. 한 현지 소식통은 통화에서 “오후 1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해 오후 2시 무렵에는 수십만명으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동양의 진주’ 홍콩은 왜 분노하는가?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지난 7월 9일 송환법 사망을 공식화했다. 6월 9일 100만명이 참가해 송환법 반대 시위를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 만이다. 홍콩 정부의 송환법 추진 철회를 계기로 홍콩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면서 ‘강압적 중국화’에 반대하는 반중 정서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 휘장이 훼손되고,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바다에 버려졌다. 중국 중앙정부는 폭력시위를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거듭 강조했다. 선전에는 인민해방군 소속 무장경찰 부대가 속속 집결해 홍콩 진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홍콩의 중국화에 반감… 국가법 추진, 야당 강제해산 불만
홍콩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송환법을 반대해서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는 “중국 정부가 송환법을 악용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데리고 갈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이들은 “홍콩 민주주의가 침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송환법 반대의 밑바닥에는 중국 중앙정부가 밀어붙이는 ‘강압적 중국화’가 홍콩인의 분노를 촉발했다는 분석이 많다. 1997년 영국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중국 중앙정부는 일국양제(一國兩制), 항인치항(港人治港)의 원리에 따라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렇지만 중국 본토인들의 대량 유입으로 정치, 경제 분야 등에서 홍콩인들이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4년 대규모 민주화 요구시위인 ‘우산 혁명’을 벌였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중국 정부는 홍콩의 독립 목소리를 막기 위해 더욱 강경하게 중국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2년 전 홍콩 20주년 반환 행사가 열렸던 2017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홍콩을 방문했지만, 여론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미 홍콩인들은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다. 홍콩인들은 “중국이 일국양제를 약속했지만,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또 “중국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금융, 교육 등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가 속았다”고도 한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중국 국가가 연주될 때 모욕적인 행동을 하거나 풍자나 조롱의 목적으로 노랫말을 바꿔 부르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국가법’(國歌法)을 추진했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독립 성향을 가진 야당 후보 피선거권을 잇달아 박탈하고,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민족당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차이야오창(蔡耀昌)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 부주석은 “중국 정부가 홍콩의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다”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려온 홍콩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몰려오는 본토인들… 경제적 박탈감에 빠진 젊은이들
정치적인 측면 외에도 경제와 사회적인 면에서도 ‘반중국 분노’는 깊다. 본토인들이 대량으로 몰려오면 홍콩이 과거보다 살기 어려워졌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가파른 물가 상승과 턱없이 오른 집값, 거기다 본토인과의 극심한 취업 경쟁 등이 맞물리면서 평범한 홍콩인들은 점차 갈 곳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100만명에 가까운 본토인들이 유입됐다. 740만 홍콩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집값이 문제다. 막대한 중국 자금이 유입되면서 2003년 이후 홍콩 집값은 400% 넘게 상승했다. 3.3㎡(평)당 1억원을 훌쩍 넘어가는 아파트도 생겼다. 66㎡ 남짓한 아파트가 20억원을 넘어가지만, 홍콩 평균 월급은 약 240만원에 불과하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는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구매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홍콩인들은 중국 부자들이 홍콩을 ‘재산도피처’로 생각하고 ‘검은돈’이 유입된 탓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홍콩 취업시장에서는 홍콩인과 중국인이 격렬한 취업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과 국유기업은 홍콩인보다는 중국인을 선호한다. 홍콩 젊은이들이 설 곳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이민을 꿈꾸는 젊은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이민을 떠난 홍콩인의 수는 2만4300명으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6년 6100명의 4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