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3월26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 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2009년 1월 대통령 취임 후 한국을 세 번쨰 방문한 그는 “(미국 수도) 워싱턴을 빼고 가장 많이 방문한 수도가 서울”이라며 “(한·미) 양국 간 특별한 유대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같이 갑시다” 등을 외친 오바마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한류 열풍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덕담도 건넸다. 미국의 많은 동맹국 중에서도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것이다.
오바마는 한국의 여러 특성들 가운데 특히 높은 교육열과 낮은 문맹률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MB와의 정상회담 도중 ‘나는 아무리 가난해도 내 자녀는 최상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접한 오바마는 훗날 숱한 자리에서 이를 인용했다. 2014년 2월에는 “미국 학교에선 약 30%의 학생만 교실에서 고속 인터넷을 쓸 수 있는데 한국은 100%가 이용할 수 있다”며 한국의 교육 인프라를 극찬했다. 그러면서 미국 교육 당국자들에게 “(미국의) 어린 학생들이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이점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4월25일 오바마의 방한으로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꽃다운 나이의 고교생들을 비롯해 300여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직후였다. 오바마는 정상회담 개시 직전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또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미국 백악관에 게양됐던 성조기를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 오바마는 “미국에는 군인이나 참전용사가 목숨을 잃었을 때 그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국기를 증정하는 전통이 있다”며 “미국의 전통과 그 정신으로 이 국기를 (박근혜) 대통령님과 또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미 국민을 대표해 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직 시절 한국 사랑이 남달랐던 오바마가 보기에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비상계엄 사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던 듯하다. 지난 5일 오바마재단 주최로 열린 민주주의 포럼에 참석한 그는 한 국가에 존재하는 정치적 이념들 간의 차이점과 그 다양성을 용인해야 한다는 다원주의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같은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국가에선 (다원주의 실천이) 더욱 어렵다”고 덧붙였다. 야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야권 정치인들을 경쟁자 대신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윤석열 대통령을 나무란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에게조차 한국이 본받을 만한 ‘롤 모델’에서 걱정스러운 ‘환자’로 전락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