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야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 생각에 ‘부정부패 일소’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다. 부패는 뿌리 뽑혔는가. 말뿐이었다. 일소하겠다던 사람이 부패를 만들어내는 ‘큰 완장’이었던 까닭이다. 수천억원을 챙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어디 이들뿐인가. 곳곳에 박힌 큰 완장이 계속 봉투를 챙기니 작은 완장이 좇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부끄러움을 알았을까. 의기투합해 봉투를 주고받자면 무슨 소리가 나오겠는가. “당연한 것 아니냐.”
부정부패를 당연시하는 과거 우리의 참담한 모습이다.
지금은 나아졌을까. 완장 왈 “좋은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덥석덥석 돈 봉투를 받아 쇠고랑을 차는 사람이 아직도 한둘이 아니지만 이런 말이 들리니 분명 달라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피아’라는 말이 일반명사처럼 쓰인다. 관료사회, 법조계, 공기업에서 끼리끼리 짬짜미를 하며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완장 중의 완장이다. 돈을 직접 받아 챙기면 뇌물이니 쇠고랑을 차지 않을 교묘한 방법을 쓴다. 바로 전관예우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정책이 돈벌이 수단으로 변해 나라는 엉망으로 변하고, 법의 정의는 왜곡되며, 공기업은 부실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나라 꼴이 제대로 설 리 없다. 부패일소 백년하청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게다. ‘이 시대의 황희’도 분명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부패와의 전쟁. 성공한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돈 봉투 챙기는 수법이 교묘해진 것에서 ‘우공이산의 변화’를 읽게 된다. 왜 교묘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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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원 논설실장 |
공직자 부정청탁금지법. 20년 만에 나온 반부패 전쟁에 쓰일 칼이다.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인다. 법무부가 알맹이를 쏙 뺀 ‘껍데기 김영란법’을 국회에 넘기더니, 국회 법사위 여야 의원들은 10개월 만에 심의를 하며 “위헌소지가 있다”, “억울한 공직자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실명제 개혁 전야에 나온 “뭉칫돈이 빠져나가 나라경제가 어려워진다”던 공갈과 비슷하다.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에 국가개조위원회를, 야당 원내대표는 관피아방지특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뭐가 그리도 복잡한가. 김영란법 원안을 통과시키면 될 일이다. 선량들이야말로 ‘완장 중 완장’이요 ‘새 정치’를 외치며 ‘헌 정치’를 고수해왔으니 비비 꼬는 말이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좋은 시절이 있었다고? 완장에게는 아직도 좋은 시절이다. 세월호 참사에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았을 이 나라 국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완장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이몽룡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금 항아리 맛난 술은 천백성의 피요(金樽美酒 千人血) / 옥쟁반 맛난 안주 만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 萬姓膏) /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은 눈물 흘리고(燭淚落時 民漏落) /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歌聲高處 怨聲高).
강호원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