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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평론가 |
묘한 수신관계는 인터넷 생방송으로서의 마리텔과 TV 프로그램으로서 마리텔이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다. TV 마리텔은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을 구분한다. 토요일 밤에 TV로 보는 마리텔은 방송을 위해 사전에 편집된 변경 불가능한 콘텐츠이다. 우리가 TV로 보는 것은 사전에 편집이 완료된 출연진과 네티즌이 만든 방송 내용이다. 인터넷 방송에 참여하는 출연진과 네티즌은 TV 프로그램 마리텔 앞에서는 수동적인 타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출연진과 네티즌은 시선의 주체가 아닌 응시의 타자가 된다. 시선의 주체는 바로 시청자이다. 마리텔의 모든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끝임 없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맛난 먹잇감이다.
문화융합의 시대는 모든 미디어 콘텐츠를 서로 연결해주지만, 많은 사람을 콘텐츠 관음증에 빠지게 한다. 마리텔이건, 웹툰이건, 페이스 북이건, 스마트폰이건 사람들은 계속 무언가를 보고 있다. 아니 보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계속해서 보지 않으면 불안에 빠진다. 무언가를 계속 보아야 하는 나는 시선의 주체, 즉 응시된 타자를 쳐다보는 관음증의 주체이다. 정신분석학에서 관음증은 본디 성적인 장면을 관찰하고 싶은 충동이나 그러한 환상을 반복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콘텐츠 관음증은 성적인 대상을 콘텐츠로 대체한다. 콘텐츠 관음증은 반복적이고 강박적이기 때문에 뭔가 색다르고 화끈한 것을 계속해서 찾고 싶어한다. 방송사에서 새로운 예능 콘텐츠 포맷을 계속해서 발굴하려는 것도 시청자들의 콘텐츠 관음증의 강도 때문이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출연자의 조작된 감동 스토리를 즐기는 시청자들은 항상 새로운 볼거리를 향해 눈을 돌린다.
마리텔은 콘텐츠 관음증에 빠진 시청자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 날 것 그대로의 반응과 더 자극적인 소통을 원하는 시청자들은 더 즐겁게 해줄 콘텐츠를 원한다. 보는 것의 욕망은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바꾸려 한다. 무엇이 콘텐츠 관음증의 강도를 높이는가. 바로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은 콘텐츠 관음증의 심리를 이용해 계속해서 돈을 벌려 한다. 결국 계속 뭔가 보고 싶은 시청자의 관음증은 자본에 의해 다시 응시의 타자가 된다. 문화자본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