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를 17년 동안 지켜온 성언창(54) 대장은 지난 5일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천체 관측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때의 열정과 감흥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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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언창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장이 1974년 당시 국내 최초로 도입된 지름 61㎝짜리 반사망원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충북 단양 소백산 연화봉에 세워진 소백산천문대는 국내에서 현대 광학 천문학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백산천문대 제공 |
성 대장이 소백산 ‘별밤지기’를 자처한 것은 이때부터다. 먼저 계약직으로 와 있던 대학 후배 경재만 박사와 의기투합해 1주간 맞교대로 밤샘 관측을 이어갔다. 성 대장은 “밤하늘이 맑은 날 국민 혈세로 사들인 망원경을 놀리는 일은 죄악이라는 생각에 관측에 매달렸다”며 “망원경이 고장나 관측할 수 없을 때는 죄스런 마음마저 들었을 정도”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맞교대 상대가 교육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20일 가까이 쉼없이 낮밤이 바뀐 채 ‘나홀로 관측’을 벌였고, 그런 끝에 그는 89년 소백산천문대에서 관측한 데이터를 활용한 논문의 공동저자로 처음 등재됐다.
이때부터 쌓인 관측자료는 1990년대 들어 학계에 파급력이 큰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논문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 들어 국내외 학술지를 대거 장식했다. 올해 6월 현재 천문대 자료를 활용한 석사는 32명, 박사는 5명에 이르고, SCI 논문은 64편, 비 SCI 및 연구논문집은 140편에 각각 달한다. 이 같은 실적에 힘입어 소백산천문대는 한국 근대 천문학의 ‘요람’으로 불렸다.
과학고 학생이 천문대를 찾아 관측하고 그 데이터를 처리해 논문으로 발표하는 실습을 가장 먼저 시작했는데, 처음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이제는 어엿한 대학원생으로 성장했다. 이후 교육 프로그램은 대학(원)생과 문화예술 인사, 아마추어 천문가와 초·중·고교생 등 일반 대중까지 대상을 넓혀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성 대장은 “과학기사를 전수 조사한 결과 절반이 우주를 비롯한 천문학과 관련된 주제를 다룬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처럼 천문학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과학문화가 스며들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데, 소백산천문대가 앞장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