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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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사일 쏘고 자랑하지만 미국은 신경도 안 쓰는 이유 [박수찬의 軍]

‘쏘고 터뜨리고 자랑하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이래 10여년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 전력을 구축하는데 국력을 쏟았다. 

 

핵실험과 더불어 온갖 종류의 미사일을 만든 북한은 이를 국내외에 과시하면서 ‘강성국가’의 면모를 강조하려 애썼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이 화염을 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서울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북태평양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한·미·일을 계속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같은 공세적 자세는 북한이 다른 핵보유국과 달리 실질적 전쟁수행능력과 전략적 억제력을 함께 추구하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이 북한 미사일 위협을 느끼는 수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지리적 여건과 북한의 기술 수준 때문이다. 미국으로선 북한 미사일 위협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으나, 한국에게는 실질적인 문제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이나 연합작전체계와는 별도로 한국군도 새로운 차원의 억제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거리, 그 이상을 보여줘야 억제력 생겨

 

북한은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직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대로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을 매우 위협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북한의 기술적 한계와 불확실성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가장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려면, 미 본토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평양에서 미 워싱턴까지 핵폭탄을 날릴 1만㎞ 이상의 비행거리를 지닌 장거리 미사일, 미국의 보복공격을 회피한 뒤 반격에 나설 수 있는 제2격(second strike) 능력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중앙TV·뉴시스

표면적으로 볼 때는 충분한 수준의 핵타격 능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다르다.

 

북한은 화성-14·15·17·18형 ICBM을 개발해 시험발사했지만, 정상각도 발사 대신 고각발사만 이뤄졌다.

 

고각발사는 한반도 주변국에 물리적 피해를 주지 않고도 비행시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검증을 할 수 없다는 문제가 남는다.

 

ICBM에 탑재된 핵탄두가 고도 수천㎞의 정점 고도에 이르면, 핵탄두는 서서히 지상 표적을 향해 낙하한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핵탄두가 대기권에 재진입하면 6000~7000도의 고열과 충격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고열과 고압에 직면한 탄두는 표면부터 조금씩 깎인다. 이게 커지면 탄두가 터진다.

 

이를 방지하려면 탄두가 적절한 수준으로 균일하게 깎여나가야 한다. 이 기술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CTR) 체제에서도 수출금지품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냉전 시절부터 미사일 개발에 혈안이 되어온 북한도 이같은 부분은 잘 알고 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술 습득을 시도했을 것이지만, 대기권 재진입 기술 검증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검증이 되지 않으면 미국을 겨냥한 핵 보복능력 과시는 한계가 있다. 이지스구축함과 SM-3 요격미사일, 본토의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로 미사일방어(MD)체계를 구축한 미국이 고각발사 이력만 있는 북한 ICBM을 중국·러시아 미사일 수준 위협으로 간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제2격도 마찬가지다. 제2격을 대표하는 무기는 전략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다. 

지난 2023년 9월 6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이 진수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2016년 8월 북극성-1형 SLBM 시험발사에 성공한 직후 북극성-3·4·5형을 선보였다. 한반도를 겨냥한 소형 전술 SLBM도 개발했다. SLBM은 어느 정도 갖춘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잠수함이다. 바다 밑에서 무거운 SLBM을 싣고 다니며 안정적인 발사 플랫폼 역할까지 수행하려면 고도의 잠수함 제어 기술과 내열·내압 기술 등이 필요하다.

 

북한은 지난해 SLBM을 탑재하는 재래식 동력 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선보였다. 지난 2015년 SLBM 발사용으로 만든 8.24 영웅함보다는 SLBM 공격 능력이 향상됐다.

 

김군옥영웅함은 옛소련이 1950년대 만든 로미오급 잠수함의 길이를 연장하고 SLBM 발사관을 과도하게 설치한 형상을 갖고 있다. 실전용이라기보다는 북한의 국방과제 실현을 선전하는 상징적 존재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이 추진한다고 밝혔던 핵추진잠수함은 감감무소식이다.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미군의 증원을 저지하려면 한미 연합군에 대한 전술핵 타격능력과 더불어 미국에 대한 직접 타격 위협이 실질적 차원의 위협으로 여겨져야 한다.

 

하지만 ICBM과 SLBM의 위력에 의문부호가 붙어있는 상황에선 북한 핵위협 강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에 실제적 차원의 핵위협을 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이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한국, 새로운 억제전략 정비할 때

 

반면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미사일은 실질적 차원의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2019년 이후 미사일을 이용한 전술핵 능력은 획기적 수준으로 바뀌었다.

 

소형 전술핵탄두 화산-31형과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1·2를 만들었다. 핵무기종합관리체계(핵방아쇠)와 가상훈련을 공개했으며, 초대형방사포와 전술지대지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등 다양한 핵무기 플랫폼을 선보였다. 

 

대량생산과 실전배치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과거보다 대남 전술핵 공격능력이 대폭 강해진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남북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북한은 재래식 전력을 앞세운 군비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만큼 재래식 전력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체제 생존에 모든 능력을 올인하는 북한이 찾아낸 카드는 핵무기. 전술핵을 앞세우면 평시엔 억제력을 확보할 수 있고, 유사시엔 한국군의 전쟁수행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겠다는 의도다.

 

한국은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미국 핵전력과 한국군 재래식 전력으로 북핵 위협을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선 재래식 전력 확충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 내륙의 전략표적을 무력화할 미사일 전력 강화가 필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 사업을 지도하면서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중앙TV·뉴시스

그럼 어떻게 미사일 전력을 증강해야 할까. 합동참모본부 무기체계조정관을 지냈던 신영순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11일 국방 우주·미사일 전략 포럼에서 △미사일 통합 운용개념 정립 △소요재원 최소화 △전·평시 미사일 생산체계 구축 △지하화를 제시했다.

 

우선 미사일을 확보하려면 구체적인 소요를 확인해야 한다. 이는 표적의 위치와 특성 등에 따라 달라진다.

 

지상 발사 탄도미사일로만 파괴가 가능한 표적이 있고, 지대함 순항미사일이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로도 격파할 수 있는 표적이 있다. 미사일 1발로도 무력화가 가능한 표적, 여러 발을 쏴야 파괴되는 표적도 있다. 

 

이를 합동전장운영개념을 토대로 소요를 산정해야 타격수단별로 적절한 수준의 소요를 얻을 수 있다. 육해공군이 각각 전력증강을 시도하면 중복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사일 기능과 설계를 단순화하고 부품 공유를 확대하는 등의 작업을 통한 비용 절감도 필요하다. 예전에는 전쟁이 속전속결로 이뤄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최근 추세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소모전 양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사용되는 미사일 양도 늘어난다. 폭증하는 수요를 충족하려면 미사일 제조 단가가 낮아야 하며, 신속한 대량 생산을 위해 구조와 기능도 단순해야 한다. 우수한 성능은 필수다.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이 발사차량에서 기립해 발사를 앞두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 수행에 필요한 수요에 더해서 비축 물량까지 추가 확보하고, 전시에는 얼마나 미사일을 더 생산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전 판단도 필요하다. 그래야 방산업체도 자재와 생산라인 유지에 필요한 기준을 얻을 수 있다.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미사일 제작·비축·운용 시설의 지하화도 중요하다. 북한은 산악 지역에 벙커와 지하시설을 만들어 탄도미사일 전력을 은폐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를 통해 한미 연합군의 공습을 회피하려는 의도다.

 

이외에도 선진국과 미사일 기술 공동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인도는 러시아와 합작해 브라모스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개발했고, 미국과 일본은 SM-3 요격미사일을 개발했다. 

 

선진국과의 공동개발은 기술적 리스크를 낮추면서 협력을 통해 첨단 기술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 국제공동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고 있다.

 

범정부적인 정책지원을 통해 미사일 전력증강을 추진 해야 북한의 핵위협에 맞설 수 있는 첨단기술 확보가 쉬워진다. 

 

북한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방어수단도 충분한 미국은 북한 미사일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지만, 북한과 인접한 한국은 다르다. 

 

첨단 과학기술과 미사일 등의 비대칭 전력으로 북한 전술핵위협을 억제해야 한반도에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부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