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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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셀프 즉위식’…반도체 제국을 넘어 ‘AI 문명’ 설계자로 [CES 2026]

입력 : 2026-01-12 06:34:21
수정 : 2026-01-12 06: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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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 넘어 全산업 인프라 장악
“거대 ‘AI 제국’ 청사진 완성한 셈”
“엔비디아 없는 AI 전환 사실상 불가능”

지난 5∼9일(현지시간) 엔비디아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6’에서 선보인 수많은 혁신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회가 아니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전 세계 기술 생태계의 패권을 쥐고 있음을 확인하는 ‘황제 즉위식’과도 같았다.

 

엔비디아는 이번 행사에서 단순히 더 빠른 연산 장치를 판매하는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데이터센터부터 로봇, 자율주행차, 제조 공장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의 인프라를 장악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군림하겠다는 야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황 CEO는 “컴퓨팅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됐다”고 선언하며, 가상 세계의 지능을 물리적 세계로 이식하는 ‘피지컬 AI’ 시대의 도래를 공식화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CES 2026 라이브에서 루빈 GPU를 선보이고 있다. 뉴스1

◆루빈, AI 경제성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

 

이번 즉위식의 왕관은 차세대 AI 슈퍼컴퓨팅 플랫폼 ‘루빈(Rubin)’이었다. 루빈은 단순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아니다. CPU(베라), GPU(루빈), 네트워크 스위치(NV링크 6), 슈퍼NIC, DPU 등 6개의 서로 다른 칩이 하나의 거대한 슈퍼컴퓨터처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도록 설계된 기술이다.

 

루빈의 등장이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이다. 엔비디아는 루빈 플랫폼이 이전 세대인 블랙웰 대비 추론 토큰 생성 비용을 10분의 1로 절감하고, 전문가 혼합(MoE) 모델 훈련에 필요한 GPU 수를 4분의 1로 줄인다고 밝혔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빅테크 기업들이 초거대 AI를 운영할 때 겪는 비용 병목을 해결해 주는 동시에, 이들이 엔비디아의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족쇄가 된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AI 슈퍼팩토리에 루빈 도입을 확정 지으며 엔비디아 중심의 질서에 순응했다.

CES 개막일인 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루 호텔 엔비디아 부스에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 트레이가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기계에 ‘이성’을 부여하다

 

엔비디아는 칩을 넘어 물리적 세계를 움직이는 두뇌까지 장악하려 한다. 황 CEO는 “로보틱스의 챗GPT 모먼트가 도래했다”며 로봇과 자율주행차를 위한 오픈 모델 생태계를 공개했다.

 

핵심은 ‘코스모스(Cosmos)’와 ‘알파마요(Alpamayo)’다.

 

코스모스는 물리 법칙을 이해하는 월드 모델로, 로봇이 가상 시뮬레이션에서 학습하고 현실에서 작업하는 워크플로우를 완성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LG전자 등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차세대 로봇을 선보였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알파마요’가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기존 자율주행이 사물을 인식하는 데 그쳤다면, 알파마요는 인간처럼 상황을 ‘추론’하고 판단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비전 언어 행동(VLA) 모델이다. 이 기술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CLA에 최초 탑재돼, 올해부터 실제 도로를 달리게 된다. 이는 엔비디아가 단순 부품 공급사를 넘어 완성차 업체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파트너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CES 2026 라이브에서 기조연설 도중 알파마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제조업의 재정의… 공장 전체가 ‘거대 로봇’

 

엔비디아의 야망은 제조 현장으로까지 뻗어 나갔다. 지멘스와의 파트너십을 확장하여 ‘산업용 AI 운영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엔비디아는 자사 옴니버스(Omniverse)와 AI 기술을 지멘스의 산업 자동화 노하우와 결합해 공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AI 로봇으로 전환하고 있다. 펩시코(PepsiCo)와 같은 기업들은 이미 디지털 트윈을 통해 공장 가동 전 잠재적 문제의 90%를 식별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엔비디아가 전 세계 제조업의 ‘운영체제(OS)’ 역할을 맡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 개막 이틀차인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 마련된 엔비디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그래픽도 스펙 대신 SW 혁신으로

 

엔비디아는 게이밍 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새로운 소비자용 GPU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AI가 프레임을 생성하고 화질을 개선하는 DLSS 4.5와 ‘신경 렌더링(Neural Rendering)’ 비전을 제시했다.

 

황 CEO는 “미래는 신경 렌더링”이라며 AI 소프트웨어를 통한 그래픽 혁신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변화를 시사했다. 이는 하드웨어 스펙 경쟁보다는 AI 기술 우위를 통해 사용자 경험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 개막 이틀차인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 마련된 엔비디아 전시장에 서버의 배달 로봇이 진열돼 있다. 뉴스1

결국 엔비디아는 이번 CES를 통해 AI 칩, 소프트웨어, 로보틱스, 자율주행, 제조 공정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AI 제국’의 청사진을 완성했다. 루빈 플랫폼이라는 압도적인 인프라와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무기를 앞세운 엔비디아는 이제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미래 산업의 규칙을 정하는 절대 군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전 산업군은 이제 엔비디아가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 AI 전환을 서둘러야 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를 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