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기무(설왕설래)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조선말기에 군국기무처라는 관아가 있었다. 군사와 국사의 중요하고 비밀스런 일을 맡아 처리하는 핵심기관 중 하나였다. 1894년 갑오경장의 주체세력이 새로운 통치체제의 수립을 위해 제도개혁에 착수하면서 그 중추적 협의기관으로 설치한 것이다. 당시 행정을 주관하던 의정부와 각 아문을 오늘의 행정부격이라 한다면 군국기무처는 입법부에 해당된다.
기무란 말은 중요하고 비밀을 지켜야 할 일을 뜻한다. 이 기무란 어휘가 관아의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880년(고종 17년) 국사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면서이다. 당시로 말하면 조선왕조는 열강의 개국압력을 맞아 국정의 동요가 격심했던 시절이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서구제국이 바짝 달려들면서 막중한 현안들이 산적해지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통리기무아문을 둔 것이다. 이 통리기무아문은 2년 후인 1882년 미와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면서 다시 통리내무아문과 외교전담의 통리아문으로 분할되기에 이른다.
아무튼 기무란 어휘가 관청의 정식명칭에 등장한 것은 조선말기의 두 번이 전부이고 두 번 다 비상시국에 대처한다는 뉘앙스로 사용되었다. 개화의 물결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조선은 중국중심의 국제사회에서 최혜국대우를 누리는 국가였지만 어느날 갑자기 열등국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는데 바로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이 시발이 되었다. 그 때문에 예법이나 따지던 조정의 중신회의는 국운이 걸린 군사와 국사로 영일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 등장한 기무란 말이 1백년을 건너뛰어 다시 관청 명칭에 사용된다.국군보안사령부가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된다는 것이다. 이름이야 아무래도 부르기 편하면 그만이겠지만 개화기의 충격을 연상케 하는 말을 골라낸 그 재치가 묘한 여운을 남긴다.
하긴 지금의 정세가 구한말의 양상을 닮았다는 평가도 있고 보면 기무처 대신 기무사가 등장한 인연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꼴을 보고 이름을 짓는다던가. 국군기무사령부의 위상을 좀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