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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나명순 생활부장(데스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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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들어서면 양옆으로 혹은 길다랗게 한두평에서 예닐곱평에 이르는 밀폐된 방들이 늘어서 있다.방의 전면은 유리벽,방안에는 탁자와 의자,영상반주기(뮤직박스)와 마이크가 갖춰져 있다.동전을 넣고 애창곡의 고유번호를 찾아 버튼을 누르면 영상과 노래가사,반주음악이 흐른다.손님들은 이에 맞춰 마이크를 잡고 열창에 들어간다.머리위에선 사이키조명이 빙글빙글 분위기를 돋운다.
요즘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는 노래방(노래연습장)풍경이다.입장료(2천원내외)와 반주료(1곡당 5백원)를 합해 3인기준 3곡씩 부른다면 1만원,목이 쉴만큼 10곡씩이면 2만원쯤 된다.
「위세」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대도시건 중소도시건,도심에건 변두리건 지역 가림없이 자고 일어나면 새 간판들이 나붙는다.보면 노래방이다.사회전반의 극심한 불황에 잔뜩 움츠러든 형국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노래방이 일본에서 현해탄을 건너 부산에 상륙한 것이 지난해 8월.경남지방을 휘어잡는가 싶더니 대구를 거쳐 북상길을 재촉,연말엔 서울에 입성했고,지금은 방방곡곡을 석권할 태세다.지난달 23일에 발표된 국세청자료를 보면 전국의 노래방은 2월말 5백59,4월말 2천56군데.그러나 관련업계에선 6월중순 현재 6천여 업소로 추산하고 있다.가히 파죽지세요 우후죽순이다.하루라도 속히 개업하고 싶은데,기기공급이 따라주지 않아 노심초사하는 예비업자가 줄을 서있다고도 한다.노래손님이 예약없이는 두세시간씩 방이 나기를 예사로 기다리는 상황이라니 애가 타도 보통 타겠는가.
마이크차례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그 노래손님들,철이 덜든 청소년들이겠거니 지레 어림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중고교생에서 대학생 직장인 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노래손님은 성별­연령­세대불문.오피스빌딩가의 점심시간,노래방은 직장인들로 만원사례.회식이나 계모임의 「2차」도 이제는 노래방이란다.「국민오락장」이라는 별칭이나 「국민개창운동이라도 벌어진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는 표현이 부풀린 말로 들리지 않는다.
무엇이 그처럼 우리국민들을 노래방으로 끌어들이는가.우선 경제성 편리함 자유로움이 그 유인요소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발휘한다.「노래방 아닌 어디서 그만한 돈으로,그처럼 손쉽고 자유롭게,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머릿속 찌꺼기를 그만큼 말끔히 씻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술」도 「여자」도 없이 오직 자판기로 반주음악만을 판매할 뿐인 노래방을 퇴폐유흥업소와 한데 묶어 흰눈으로 보려는 사회일각의 의식을 노래손님들은 단호히 거부한다.
다음으로 노래방의 위력은 우리민족의 정체성 역사성과도 그 근원이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신명에의 동화의식,농경사회 특유의 생활관습,사회적 억압구조등으로 인한 원과 한,이의 반사작용인 카타르시스.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 법.한과 흥 역시 그런 관계다.우리민족은 상고시대 제천의식이래 「굿마당」을 생활화해 왔고,여기선 으레 「주야음주가무」「연일음식가무」하곤 했다.50년대 시골마을에서 크게 유행했던 「콩쿠르대회」,그 연장선상이랄 수 있는 텔레비전의 수많은 「노래자랑」 프로그램들,또 하고많은 쇼­가요프로그램등의 열기와 인기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한반도에 젓가락장단 없는 술집이 없고,가요학원이 번창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 노래방이 「풍속영업규제에 관한 법률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지난주말부터 경찰의 단속영역으로 들어갔다.다른 유흥업종과 형평에 맞게 심야영업이 금지되고,그동안 우려돼 왔던 미성년자 출입과 소음공해,퇴폐행위등이 그 단속의 대상이다.
늦은감이 있지만 잘하는 일이다.하지만 행여 그 단속이 또 하나의 「비리」에 추가돼서는 안된다.경찰은 단속이 아니라 노래방이 건전한 오락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도와주는데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왜색대중문화의 찌꺼기란 찜찜한 구석만 우리나름의 색다른 아이디어로 일부나마 털어낼 수 있다면,또 제대로의 관리만 전제된다면 노래방이야말로 이제껏 우리가 소유해온 어떤 형태의 「풍속영업」보다도 건강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국자들에겐,노래방의 폭풍같은 인기를 뛰어넘으면서도 부작용의 우려가 극소화되는 또다른 놀이마당­경제의 노래방,문화의 노래방,교육의 노래방,통일의 노래방…,그리고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정치의 노래방을 창출하여 국민앞에 내놓기 전에는 노래방이라는 서민대중의 스트레스정화장치를 위축시킬 권리가 없다.
기자는 올 연말 대선에서 그런 「정치의 노래방」을 내놓는 후보에게 이웃들과 뜻을 합쳐 한표를 행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