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로 전쟁 발발 1주년을 맞는 이라크. 미군 주도 연합군은 이라크 국민을 압제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큰소리쳤지만, 국민들은 저항세력의 테러공격으로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개전 명분이던 대량파괴무기(WMD)는 자취조차 없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난처한 입장에 처한 가운데 이라크는 전후 재건을 둘러싼 인종·종파간 대립으로 극도의 혼란상을 보이고 있다. 바그다드와 키르쿠크 등 현지 취재를 통해 이라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파견되는 한국군의 안전문제 등을 중점 점검한다.
편집자주
비행기 문을 나선 순간 먼지가 잔뜩 섞인 바람이 불어닥쳤다. 바그다드의 첫 인상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28시간 만인 13일 오후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요르단 암만공항과는 달리 바그다드공항은 텅 빈 활주로에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현재 바그다드행 민간 항공기는 거의 끊긴 상태다.
다만 요르단 항공사인 로열 조르대니언(Royal Jordanian)이 하루 한 번 암만과 바그다드를 오간다. 100석도 되지 않는 작은 비행기를 채운 사람들은 기자 아니면 사업가였다.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육로를 이용한다. 비행기보다 싸기도 하려니와 항공기를 향한 공격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육로를 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1000에 이르는 사막 고속도로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이른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 자주 출몰한다.
암만에서 바그다드까지는 온통 사막이었다. 모레 벌판이 지루해질 즈음 마침내 녹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그다드는 무척 잘 정비된 도시였다.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반듯하게 길이 뻗어 있었다.
같은 비행기를 탄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기자가 연신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바그다드공항에선 장총을 든 사내들이 승객들을 쏘아보며 짐을 샅샅이 살폈다.
민간 차량은 수 외곽지역에서부터 접근이 봉쇄됐다. 항공기를 향해 총을 쏘아대는 사람이 많아서라고 한다.
일단 짐을 풀기로 하고 바그다드 시내에서 가까운 바빌론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여러 대의 탱크와 마주쳤는데, 머리를 삐죽 내민 미군들이 전방과 후방을 주시하며 포신을 겨누고 있었다. 미군 험비 차량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러나 바그다드 시내에선 폭격을 맞아 부서진 건물을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시 외곽엔 처참한 곳이 더러 있지만 미군이 주요 시설만 골라서 공격했기 때문에 시내 쪽은 멀쩡한 편이었다.
호텔 정문엔 동네 한량들로 보이는 청년들이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몇 명이 장총을 들고 있었다.
바그다드의 거의 모든 호텔과 병원, 관공서 앞에는 어김없이 총을 든 장정들이 지키고 있다. 심지어 구멍가게조차 보안요원을 고용한다. 그만큼 치안이 최악이라는 얘기다.
호텔에서는 총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헬기들이 티그리스강을 저공비행하는 게 보였다. 총을 누가 쏘는 것이냐고 호텔 직원에게 물었더니 미군이 연습하는 소리이거나 이라크인들이 산발적으로 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이라크에선 납치사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이 불법 총기를 단속하는데도 이라크인들은 여간해선 총기를 신고하지 않는다. 불법 무기시장에 가자고 가이드를 한 시간이나 설득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라크 남자들도 그곳엔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데나 총을 쏘아대는 데다 범죄자들이 득실대기 때문이다.
특히 오후 6시 이후엔 남대문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가라다 거리를 제외하고는 바그다드 대부분 지역에서 인적이 끊긴다.
가라다 거리엔 양쪽으로 상점이 늘어서 있는데 물건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팔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전 정권에서는 경제제재 탓에 물자가 부족했으나 지금은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들이 넘쳐난다. 이라크에는 현재 정식 정부나 법이 없기 때문에 관세도 없다.
그래서 수입업자들이 활개를 친다. 한국제품도 빠지지 않는다. 거리엔 현대 대우 기아의 중고차가 달리고 LG는 가라다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간판이다.
활기에 넘치는 가라다 거리를 걷는 도중 웅성거리는 한 떼의 사람들을 만났다. 주변에 관을 얹은 차량이 서 있었다. 가이드가 잠시 알아보고 오더니 돌아가자고 했다.
전날 이 거리에서 폭탄이 터져 한 명이 숨졌는데 그를 추모하기 위해 친척과 이웃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격앙돼 있는 사람들이 외국인을 보면 거부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게 가이드 설명이었다.
특히 미국인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한 듯했다. 바그다드 대학 앞에서 만난 6명의 여대생들은 후세인이 미군보다 낫다고 입을 모았다.
집을 수색한답시고 돈을 훔쳐간 미군도 적지 않다고 했다. 해방군이 강도로 돌변했다는 얘기다.
전쟁 중에 요르단이나 이웃국가로 피신하지 않고 바그다드에 남았던 사람들은 미군에 더욱 치를 떨었다.
야신이라는 중년 남성은 당시 바그다드 거리에 이라크 민간인들의 시체가 나뒹굴었으며 미군이 시체의 목을 자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민심을 느끼고 있는지 호텔에서 본 미군들은 방탄조끼를 입은 채 총을 무릎에 세우고 식사를 했다. 민간인들조차 버거워보이는 방탄조끼를 벗지 않았다.
바그다드의 미군 본부를 지키는 이마뉴엘 레거스피 하사는 “이라크인들이 죽은 짐승의 몸 속에 폭탄을 숨겨 미군을 공격한 적도 있다”며 “그들은 (폭탄을) 숨기고 우리는 찾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9개월 전 이라크에 배치된 레거스피 하사는 다음달 독일로 옮겨간다. 그는 한달 동안 유럽에서 꿈같은 휴가를 즐기겠다며 부풀어 있었다.
미군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이라크인들은 생활 터전에서 고전하고 있다. 바그다드 세디야 지역의 아가디에르 여중고에선 70명에 가까운 학생이 가로세로 각각 10m도 되지 않는 교실에 다닥다닥 붙어앉아 책도 없이 공부하고 있었다. 떡시루나 다름없었다.
또 전쟁 전엔 연인들로 넘쳐났다던 알조라 공원은 찾는 사람이 없어 음산한 분위기였다. 알조라 공원은 바그다드에서 가장 큰 유원지다. 밖은 위험한 데다 먹고 사는 게 고달픈 까닭에 이라크인들은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쟁 이후 이라크에서 눈에 띄게 변한 것 중 하나는 교통정체다. 무차별적으로 수입된 중고차들로 바그다드 거리 곳곳은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기가 찬 것은 도로에 신호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교차로마다 차량 줄이 꼬여 경적과 함께 난리통이 벌어진다.
그래도 다들 이런 상황에 숙달된 듯 눈치껏 운전한다. 바그다드 시민들은 무법천지 도시에서 요령껏 살아가고 있었다.
하늘도…땅도…바그다드 가는길 ''바늘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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