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목숨이 경각에 달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족이 손가락을 깨물거나 잘라 나온 피를 먹이거나, 환자의 손가락을 째 혈을 뚫어 줬다. 물론 단지(斷指)는 자신의 결연한 의사표시나 결단의 행위이다. 우리에겐 안중근 의사의 단지가 가장 뜻깊게 기억된다. 1909년 3월 러시아에서 동료 11명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결의하고 손가락을 잘라 피로 맹세했던 안 의사는 마침내 그해 10월 그 뜻을 이뤘다. 지난해에는 의붓딸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을 풀어준 재판부에 40대 여성이 항의 표시로 손가락을 잘라 보내 세간을 놀라게 한 일도 있다.
요즘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단지가 화제다. 오른손 둘째손가락을 스스로 자른 것이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85년 현역입영 판정을 받았던 이 의원은 1986년에 바로 그 손가락 때문에 입영했다가 귀가조치됐다. 국적 포기가 병역의무와 연계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듯이, 이 의원 단지도 같은 맥락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생운동을 한 동지들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썼다”는 이 의원의 해명은 80년대 암울한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한 가지 행위를 놓고 혈서 외에도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쳤다’ ‘우울해서 잘랐다’는 등 서로 다른 설명을 해와 의혹의 눈길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의원만이 진실을 알고 있고 수사대상도 아니어서 무성한 뒷말이 이어지다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일로 다시 생각나는 게 없진 않다. 이 의원이 단지의 동기로 86년 서울대생 김세진 이재호군의 분신 사건을 든 까닭에 두 젊은이의 희생을 새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된 것이다. 당시 두 젊은이의 분신은 운동권뿐 아니라 ‘비겁한 기성세대’에도 큰 충격과 아픔을 안겨 준 사건이 아니었던가.
이익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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