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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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세계적 첼리스트 장한나 어머니 서혜연씨

잘할 때 칭찬하고 지칠 땐 격려
조력자로서 부모역할이 중요
“음악은 소리를 통해 감정을 청중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아이가 이를 닦듯이 날마다 음악성을 갈고닦는 데 조력자로서 부모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 ‘한국의 미샤 마이스키’로 불리며 세계의 유명 무대에서 환호와 박수를 한몸에 받는 그의 영광 뒤엔 아름다운 모정이 있었다. 한나양을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운 어머니 서혜연(49·미국 뉴욕)씨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딸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운 22년의 ‘그림자 역할’에 대해 이렇게 운을 뗐다.

경기 부천이 고향인 서씨는 한양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전도 유망한 음악인이었다. 그러나 25세 때 결혼과 함께 잠시 음악의 꿈을 접었다. 곧바로 한나양을 임신했기 때문. 이후 서씨는 한나양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조기 발굴해 적극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키면서 대리만족을 해야 했다.
서씨는 한나양에게 첼로를 가르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대학 때 음악을 전공해 한나가 자연스럽게 음악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은 풍요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에서 한나에게 세 살 적부터 음악을 들려 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한나가 외동딸이이어서 음악을 벗 삼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작용했어요. 그렇다고 한나가 전문 연주가가 되기를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입학선물에 큰 흥미
한나의 음악적 재능은 그 뒤에 알게 됐다. 음악을 깊이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한번은 한나가 집에 있는 피아노에 올라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고 ‘절대음감’을 타고 났음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한나가 다섯 살 때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듣고 ‘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너무 놀라 한나의 음악적 재능을 확신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런 음악을 아름답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이후 교육을 받으면서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음악성이 뛰어나고 흥미도 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한나양이 2004년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씨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익숙한 악기도 많은데 첼로를 공부시킨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나는 피아노를 세 살 적부터 시작했는데 선생께서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했다”면서도 피아노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때 4분의 1 크기의 첼로를 선물로 사 주었어요. 그런데 한나가 첼로를 매우 좋아했어요. 특히 왼손과 오른손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첼로 줄을 그어서 소리 내는 것을 흥미롭게 생각했죠. 그리고 같은 줄에서도 왼손의 짚는 위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신기해 하고, 곡 연습보다는 소리 내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습니다.”
서씨는 이런 장난기 어린 놀이들이 한나에게 훗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후 서씨는 한나에게 피아노 대신 첼로를 익히게 했다. 그리고 배운 지 얼마 안 돼 콩쿠르에 나가 1등을 하면서 본격적인 첼로 수련에 나서게 됐다.
“한나의 음악 재능을 살려 주기 위해 많은 음악회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유학을 생각했죠. 아무래도 서양 음악이니 외국에 가서 공부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어린이 유학은 매우 드물었어요. 그래서 영국문화원과 미국문화원을 방문해 음악학교의 주소를 받아 한나의 연주 테이프와 함께 편지를 보냈더니 장학생으로, 오디션도 없이 입학을 허가한다는 편지가 왔어요. 이런 반응을 보고 정말 한나의 음악성이 뛰어나다는 걸 확신한 겁니다.”
그는 첼로 공부 방법에 대해 “처음 테크닉을 터득하는 동안은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어린 나이에 고된 훈련 과정을 꾸준히 하기에 벅찬 만큼 부모가 자주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 테크닉의 집중 훈련이 아이를 피곤하게 만들고, 또 음악에 싫증을 내게 할 수 있어 재능 있는 아이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많아요. 그러나 그 고비를 잘 넘겨 테크닉에 자신이 붙으면 스스로 음악의 즐거움을 찾게 되죠. 재미있게 소리를 내보고 악보를 보고 다르게 연주해 보는 것이 필요해요. 틀리고 맞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상상력을 키우고 자신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는 단계가 정말 중요해요.”
악기 익힐 때 느낌 갖는 것 중요
서씨는 특히 어릴 때 음악을 많이 듣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첼로 연주 뿐아니라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한 단어를 익히려면 100번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새로운 언어인 음악을 배우려면 무엇보다 많이 들어야 하고, 특히 수준 높은 음악을 듣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첼로를 공부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는 물음에 “첼로 뿐아니라 모든 악기를 익힐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름다움과 슬픔, 밝음과 어두움, 강렬함과 연약함 등의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감정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테크닉을 잘 가다듬고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나양에게 첼로를 공부시키면서 겪은 일화들을 털어놨다. “에피소드가 많죠. 우선 한나가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발이 마룻바닥에 닿지 않아 종종 의자 다리를 잘라 주었어요. 첼로를 공부하면서 찾아온 첫 행운은 미샤 마이스키 선생을 만난 겁니다. 그는 예전에 한국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분이었어요. 그때 나는 저분이야말로 한나를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후 한나의 연주 테이프를 보내드렸어요. 그랬더니 두 달 후 편지가 왔는데, 연주하러 다니느라 이제야 집에 돌아와 편지를 봤다면서, 그해 여름 이탈리아에서 주관하는 3주간의 마스터클래스에 한나를 초청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한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그리고 모든 편의를 제공하면서 초청한 것이다. 이후 그는 한나에게 첼로만을 지도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소리의 중요성과 음악가의 자세에 대해서도 일깨워주었다. 미샤 마이스키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소리(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년기 클래식 많이 들려 줘야
서씨는 “음악이 사람들의 영혼과 생각을 맑게 해주고 아름다움과 행복을 선사하는 만큼 음악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공부시키는 학부모들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문 연주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우선 아이의 정서를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친구 삼아 준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해요. 아이의 예술적 감성을 열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어릴 때 음악과의 만남이 평생을 가기 때문입니다. 집 안 분위기도 바꿔 줘야 해요. 또 부모들도 어린이와 같이 음악을 자주 듣고, 연주회에도 같이 가야 합니다. 녹음으로 듣는 것과 직접 연주로 듣는 것은 감동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아이와 음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느낌을 동작이나 이야기로 표현해 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해요. 특히 레슨을 보내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 아이가 힘들어 할 때 격려하고, 잘할 때 칭찬하고, 지칠 때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박석규 기자 sk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