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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속 여성]에곤 실레―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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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몸에서 느껴지는 관능미
에곤 실레는 성과 죽음의 화가다. 거칠고 야성적인 붓 터치로 유명한 이 오스트리아 청년은 북유럽 표현주의 화풍의 주도자였다.
그는 인간의 성욕을 ‘파괴적인 힘’으로 묘사했다. 성에 매인 그의 그림은 온통 죽음과 몰락이었고, 덧없음이었다. 그 탓인지 그는 사계절 중 낙엽 지는 가을을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다 한다.
시대를 앞섰던 천재성은 그 삶에 우여곡절을 실어주었다. 자신의 수음 장면은 물론이고 차마 눈뜨고 보기 민망한 성을 화폭에 펼쳐 화단의 눈총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춘기 소녀의 누드를 그렸을 때는 ‘미성년자 유인 혐의’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이제 막 명성을 얻기 시작한 스물여덟에 생을 마감한 에곤 실레. 짧은 순간 한꺼번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간 탓인지 그의 그림은 참으로 독창적이다. 에로틱한 인물 묘사, 독특한 색조, 거칠고 뒤틀린 터치는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실레를 옥살이하게 한 ‘세 소녀’는 그 화풍의 집약체다. 빈 근교 노이렝바흐에서 전원 생활을 하며 그린 것인데, 모델은 모두 마을의 어린 소녀들로 실레의 예술적 요구에 맞추어 포즈를 취했다.

설익은 몸에 비해 관능미 넘치는 이 그림은 당장 노이렝바흐를 충격으로 몰아넣어 실레에게 풍기문란죄를 물었다. 실레는 모델들을 성적 대상이 아니라 예술적 견지에서만 바라봤다. 하지만 1900년대 초 조그만 시골 마을 주민들이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중요 부위만 살짝 가린 채 나른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소녀들의 그림은 지금 봐도 야릇한 인상을 준다. 당시의 사람들에겐 분명 음화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러한 실레의 그림은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나올 때 흔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롤리타 콤플렉스는 어린 소녀에 대한 중년 남자의 성적 집착 혹은 성도착을 말하는데, 용어는 1955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라는 소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롤리타 콤플렉스의 역사는 더 깊어 로코코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코코 시대에 그려진 ‘비너스’들을 보면 주인공의 얼굴이 모두 앳되다. 바로크 시대만 해도 풍만하고 성숙한 중년의 ‘비너스’가 캔버스를 누볐는데, 1세기 만에 비너스의 연령대가 청소년으로 바뀐 듯하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떤가? 액션으로 가장한 ‘레옹’의 마틸다, 아저씨뻘 되는 남편을 둔 ‘어린 신부’는 어떤가? ‘재미’라는 껍질을 입고 문화가 된 이런 소재들은 시선을 약간만 틀어도 롤리타 콤플렉스나 다름없다.
그리고 요즘, 중년 남성이 어린 소녀에게 말 못할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연일 터지고 있다.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흥행하는 문화와 성 도덕성 상실 사이에는 분명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에곤 실레의 그림이 예술인 이유는 그가 성욕을 그린 게 아니라 ‘파멸을 부르는 성욕’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실레의 그림 속 소녀들을 예술로 보고 있는가? 외설을 예술이라 속이는 세상 앞에서, 차라리 우리는 노이랭바흐 사람들처럼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www.brea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