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후 첫 육군 참모총장을 맡은 그는 군 인사문제 등을 놓고 청와대와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국방장관 등을 하고도 남음이 있는 인물이란 평가가 많았지만 그는 참모총장을 끝으로 군을 떠났다.
12·12 군사쿠데타 당시 사망한 동기의 묘앞에서 대성통곡한 일, 육군대학에서 ‘자랑스런 군복에 때를 묻힐 수 없다’는 강의로
전두환 장군을 비판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탓인지 후배들이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초심(初心) 남재준 사랑’ 카페(http://cafe.naver.com/lovearmy)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7일 그가 사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 자택을 찾았다.
“난 요즘 바쁘게 지내지. 골프할 줄 모르니 산에 열심히 다니고, 대학원(충남대, 원광대) 강의도 다니고…. 글쎄. 요즘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논란이 되더라고요.”
질문지를 먼저 메일로 보낼 때부터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래서 화제는 이 문제에 집중됐다.
―그동안 NLL을 바라보는 우리 정부와 북한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1953년 7월 휴전 당시 육상의 대치 상황과는 달리 바다에서는 압록강까지 모든 해상이 유엔군 관할 하에 있었다. 휴전협상에서 서해 5도를 남한이 관할하고, 그 북쪽은 북한에 양도했다. 이것은 북한에 유리한 제안이었고 이의 없이 받아들여졌다. 북한은 1953년판 조선중앙연감에서 현재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했다. 1963년에 간첩선이 침투했을 당시에도 아군이 추격해서 사격을 하니까 이후 북측은 군사정전위에서 우리가 NLL을 넘지 않았는데 왜 발포했느냐며 항의했다. 이는 북한도 실질적으로 NLL을 인정한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
―북한이 1973년 NLL에 대해 이의를 크게 제기했다고 하던데요.
“당시 미국의 군사력이 월남에 묶여 있어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신들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리한 시기로 판단한 것이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NLL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NLL을 침범하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북한이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판단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대한민국 사람인지 묻고 싶다. 남북 관계는 국제법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다. NLL은 한국군과 유엔군 40여만명이 피를 흘려 그은 선이다. 남북이 서로 앉아서 평화롭게 타협해서 얻은 선이 아니다. 정전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국제법적으로 따져봐도 문제가 없다. ”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이 최근 NLL을 영해선으로 간주하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했는데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우리 영토로 규정한 헌법 때문에 NLL을 고집할 수 없다’는 주장은 역설적으로 북한에 한반도의 일부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할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우리 헌법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NLL이 정상회담의 의제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국가의 세 가지 구성 요소는 국민·주권·영토다. 국가의 본질적 요소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영해·영토·영공은 군인들이 피를 흘려 지킨 것인데, 이것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북한이 NLL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의 입장과 협상 전략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협상은 양자 간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 협상 의제에는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못할 것도 있다. 내 생명을 주고 협상할 수는 없다.”
―서해를 평화수역으로 설정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공동어로수역으로 하자는 얘기인데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공동어로수역으로 한다고 해서 NLL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 NLL을 기준으로 북쪽은 북한이 관리하고, 남쪽은 남한이 관리하면서 고기를 잡으면 된다.”
―NLL 문제 이외에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 해결해야 할 군사적 문제는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
“군비통제, 군비축소를 따지기 전에 군사적 신뢰가 가장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 군이 보기에는 북한이 양보하는 것이 하나라면 우리는 열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호 신뢰가 회복될 수 없다.”
―남북한 군사 전력을 비교해 주십시오.
“통상 남북 군사력을 비교할 때 북한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는 비교대상에서 뺀다. 이런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재래식 무기만 비교한다고 해도 한국국방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육군 전력은 남한이 북한의 80%, 해군전력이 약 97%, 공군전력이 103% 정도 된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여전히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면서 모든 시설을 지어주었다. 자기 땅에 지은 것이므로 언젠가 자신들의 재산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일동맹의 강화로 일본은 강대국의 지위를 행사할 수 있게 됐고, 중국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미동맹이 굳건한 상황이라면 중국이 동북공정과 같은 일을 벌이거나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며 강하게 나오지 못할 것이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났을 때 중국이 북한에 개입해도 우리는 단독으로 북한에 개입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오늘의 우리와 미래를 위해서 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보장해야 한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지금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작통권 환수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현재 작통권은 한미 양국 대통령이 공동으로 행사하도록 돼 있다.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으니까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반도에 투입되는 미군에 대해 한국군이 작전지휘권을 행사한다고 볼 수도 있다.”
남 전 총장과의 대화는 약속시간 1시간을 넘겼다.“국민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군대를 내 자식처럼 애정을 갖고 지켜봐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 전 총장은 군에 대한 애정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정리=장인수, 사진=송원영 기자
■ 프로필
▲출생: 1944년 10월(서울) ▲학력: 배재고, 육군사관학교(25기)
▲경력:-제7보병사단 3연대장(1988년) -제1군 작전처 작전과장(1990년) -제1군 작전처장(1991년)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1993년) -제6보병 사단장(1995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1997년) -수도방위 사령관(1998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본부장(2000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2002년) -육군 참모총장(2003∼2005년 4월)
▲가족:부인 김은숙(58)씨와 2녀
▲출생: 1944년 10월(서울) ▲학력: 배재고, 육군사관학교(25기)
▲경력:-제7보병사단 3연대장(1988년) -제1군 작전처 작전과장(1990년) -제1군 작전처장(1991년)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1993년) -제6보병 사단장(1995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1997년) -수도방위 사령관(1998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본부장(2000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2002년) -육군 참모총장(2003∼2005년 4월)
▲가족:부인 김은숙(58)씨와 2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