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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빛낸 사람들]헨리 포드 1863∼194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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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자동차가 굴러다니기 시작한 이후 미국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차를 손꼽는다면 단연 포드일 것이다.
다른 회사들이 이윤이 많이 남는 고급차를 만들 때 포드는 일반 서민들이 탈 수 있는 대중적이며 튼튼한 차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는 미 디트로이트 근처의 농가에서 아일랜드계 이민 2세로 태어났다. 16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한 기계제작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3년 동안 내연기관 제작을 배웠다.
이후 에디슨사의 책임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1896년 틈틈이 연구하던 사륜마차 차체에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쿼드리사이클’이란 자동차를 완성했다. 자동차에 대한 그의 왕성한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03년 동업자와 자본금 10만달러로 포드사를 설립했다.
첫 차로 모델 A, B, K를 연이어 생산했지만 기존 자동차 회사들의 여러 모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헨리 포드는 1908년 혁명이라 불릴 만한 포드모델 T의 제작을 개시했다.
다른 자동차 회사의 차량 가격이 2000달러 수준일 때 825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내놓으면서 일약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모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포드는 당시 부품의 규격이 일정하지 않고 모델이 자주 바뀌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획기적인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갑싼 차를 만들기 위해 대량생산이 절실히 필요했고, 결국 1913년 컨베이어식 조립라인에 의한 양산체제인 포드 시스템을 확립했으며, 이후에도 비약적인 기술 발전과 합리적 경영방식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T형 포드는 1927년 단종될 때까지 무려 1500만대라는 천문학적인 생산량을 기록했다.
1922년에는 고급차 메이커 링컨을 인수하는 등 외형적으로 비약적인 성장도 일궈냈다.
1924년까지 미국 자동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회사를 키웠으나, 독선적인 그의 개성 탓에 경영 위기에 직면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심지어 1920년대 말에는 경쟁사인 제너럴모터스(GM)에 수위를 빼앗기고 노동조합운동에 반대하면서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료:삼성교통박물관, 포드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