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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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빛낸사람들]헨리 로이스(1863∼1933) 영국

1863년 영국의 가난한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난 헨리 로이스는 9살 때부터 신문팔이, 전보 보내기 등의 일을 하며 고학으로 전기기술을 배웠다. 그러다가 1878년 철도국 직공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증기기관차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저임금으로 고생하던 그는 전기회사에 일자리를 얻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능한 전기기술자로 대우받게 된다.
그러던 중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직접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1884년 동업자 어니스트 클레어몽트와 함께 맨체스터에 작업장을 세운다. 그는 다른 회사 제품용 필라멘트와 램프 홀더를 주문받아 생산하는 한편, 1894년에는 당시 널리 사용되던 증기·수동 크레인에 비해 더욱 편리해진 전기 크레인을 새로 개발해 높은 수익을 얻게 된다.
그는 전기사업으로 돈을 벌자 평소 관심이 많던 자동차로 눈을 돌려, 우선 첫 단계로 프랑스제 10마력짜리 트윈 엔진이 장착된 ‘드꼬비예’ 1대를 구입했다.
그러나 차의 디자인이나 성능에 불만이 많던 그는 답답한 마음에 두 명의 유능한 직공과 함께 직접 자동차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1904년 수입차 판매업자였던 찰스 롤스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됐고, 롤스는 로이스 차에 대해 독점판매 계약을 맺는다. 이후 로이스가 제작하는 차는 모두 ‘롤스로이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1906년 정식으로 롤스로이스사를 설립하고, 이후 로이스는 식사를 거를 정도로 자동차 제작에 몸을 아끼지 않으며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진다.
1911년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3년 시한부 생명’ 판정을 받은 그는 프랑스의 조그만 시골마을로 내려가 요양한다. 그는 의사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1933년 사망할 때까지 22년간이나 자동차 디자인 연구에 몰두한다.
이때 그가 디자인한 차량이 트웬티, 팬텀Ⅰ, 팬텀Ⅱ, 팬텀Ⅲ이다. 그는 또 1920년대에는 이글이나 팔콘과 같은 항공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도움말=삼성교통박물관,롤스로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