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자원봉사 행렬로 죽음의 기름띠는 걷혔지만 2500여종의 서식 생물들이 들려주던 다양한 생명의 숨소리는 안타깝게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진짜 재앙은 이제부터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생태계의 보고로 불리는 태안반도에 깊게 파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면밀한 복원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현실화되는 환경재앙=1일 환경단체에 따르면 기름띠가 상륙한 태안반도 남쪽 근소만에서 만리포, 학암포를 거쳐 가로림만 입구 만대단에 이르는 150㎞의 해안선에는 광범위한 저서생물 폐사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기름기가 갯벌 사이로 침투해 지표면 가까이에 서식하는 조개류와 게, 고둥 등 복족류가 전멸위기에 놓였다는 얘기다.
지하 50㎝ 안팎에 서식하는 갯지렁이와 규조류, 아메바 등도 시간이 흐르면서 2차 오염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보호막이 없는 해조류나 해초류는 일찌감치 집단폐사했고, 이동성이 둔한 갯지렁이 등 저서 무척추 동물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만리포 등 주요 해변은 은빛 모래를 되찾았지만 5㎝만 파도 갈색 기름기가 배어나오고, 바위 부착 생물이 풍부했던 학암포와 모항의 갯바위에는 거무튀튀한 기름기가 여전하다. 갯벌이나 바위에 스며든 기름은 독성을 간직한 채 수년간 연안 생물의 삶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과 미역, 전복 등을 키우던 5000여ha의 양식장이 쑥대밭으로 변한 해상 생태계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산소 부족으로 동·식물성 플랑크톤이 대거 사라지면서 바위틈에 정착하는 망둥어류와 배두라치 등이 모습을 감췄다.
논병아리, 가마우지 등 해안이나 연안습지에 사는 조류들도 먹이를 구하지 못해 떠났고 갈매기와 흰뺨검둥오리 등 하루 수천마리의 바닷새가 날아들던 만리포는 침묵의 바다로 변했다. 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유명한 난도(천연기념물 334호)를 수놓던 1만5000여마리의 갈매기들도 종적을 감췄다.
환경부 조사 결과 바다밑 어패류는 파괴가 진행 중이고, 어류 46종도 기름 냄새를 맡고 거의 사라졌다. 천리포 바다 밑에는 검은색 타르 덩어리와 함께 모래 위로 유화제로 보이는 하얀 가루가 뒤덮인 상태다.
한국해양연구원은 “상당량의 유류가 아직 에멀전 오일(일명 오일 볼) 상태로 해저에 남아 있어 날씨가 풀리면 2차 오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기 전 플랑크톤을 오염시켜 먹이사슬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완전 회복에는 20년 소요=정부는 태안반도의 생태계가 염습지를 제외하고 향후 10년 정도면 대략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년 후 갯지렁이 등 저서생물이 나타나고 3년 후 해조류, 5년 후부터는 모래나 암석해안이 자연정화돼 조개류가 정착하고 10년 뒤에는 대부분의 서식종이 부활한다는 게 환경부의 진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복에 최소 2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갯벌이나 모래에 섞인 기름성분이 제거되지 않고 퇴적물에 밀려 암반층까지 도달하면 조기 제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1989년 미국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스호 사건은 13년 후 조사 지역의 58%에서, 1995년 여수 씨프린스호 사건은 아직도 잔존 유분이 바다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유처리제와 고온세척기 등 인위적 방제로 생태계 복원이 늦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 2만3881ℓ가 사용된 유처리제 등에 대해 알래스카 생태 복원에 참여했던 미국의 리키 오트 박사는 “기초 미생물마저 고사시켜 알래스카에서 청어 개체수가 현저히 줄고 새들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출된 기름속의 다환방향족탄화수소(PHAs)의 피해도 예상된다. 엑손 발데스호 사고 이후 알래스카 해역에서 22종이 발견된 바 있는 이 물질은 먹이사슬을 통해 인체에 축적되면 천식이나 우울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주도의 복원 프로그램 절실=전문가들은 이번 기름유출 사고가 환경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정부 주도의 장기적인 복원 계획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피해가 광범위한 데다 지속적인 비용 조달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복원비용은 유조선 선주보험사 등이 부담할 보상금 상한선인 3000억원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면밀하게 피해를 입증해 가해 회사에 환경피해청구권을 행사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난 연말까지 환경부·해양수산부·민간전문가 공동으로 생태계 실태를 조사한 데 이어 올 연말까지 태안국립공원 및 연안 습지의 자연자원을 정밀 조사할 계획이다. 이를 기초로 내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장기적인 모니터링과 복원사업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최예영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와 민간·학계 공동으로 모니터링해 모래와 갯벌, 자갈, 암반 등 오염 부위에 따라 지속적이고도 세심한 복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안=임정재 기자 jjim61@segye.com
전문가인터뷰 해양연구원 김상진 박사
태안반도의 생태계를 조기에 회복시키려면 미생물을 이용한 적극적인 환경 정화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한국해양연구원 김상진(55·사진) 박사는 1일 태안반도 생태계 복원과 관련, “규모가 작고 수산물이 다양한 우리나라 해양의 특성을 고려해 자연 치유력에 의지하기보다는 미생물 활성화법이나 미생물 첨가법 등 부작용이 적고 회복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씨프린스호 사고 등 크고 작은 기름유출 사고 이후의 해안 생태계 변화를 연구 중인 그는 “우리나라는 긴급 방제에 치우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생태계 회복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자연 치유력에 기대는 경향이 있었다”며 “차제에 법과 제도를 고쳐 복원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정화기술 보유 기관 및 과학자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생물정화법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해양환경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1989년 발생한 엑손 발데스 사고 이후 미국도 미생물을 이용한 복원작업을 전개해 연어가 돌아오고, 바다수달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이어 “해상과 해안의 긴급 방제가 거의 마무리된 만큼 이제는 전문적인 기술로 백사장 모래 속과 해안 바위 틈에 남아 있는 기름 제거에 나서야 환경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해저에 남은 에멀션오일(일명 오일 볼)의 재부상 가능성도 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고를 일으킨 예인선과 유조선 측도 환경 복원을 위해 공식적인 방제 종료 후의 방제비용을 부담하는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태안=김을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