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화물차 증차금지 연장 논란]“족쇄 언제까지” 택배사 초비상

넘쳐 나는 물동량… 배송차량 제자리…

[이허브] “물 한 양동이면 될 불을 끄기 위해 수십대의 소방차를 동원한 꼴입니다” 물류운송의 대동맥, 영업용 화물운송 시장이 정부의 증차금지 조치에 묶여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건설교통부는 ‘08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 공급기준’을 확정, 또다시 영업용 화물차 신규허가 및 증차금지를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정부의 증차금지 조치는 2003년 화물차 수급 불균형으로 야기된 화물연대 파업 대책의 일환으로 2004년부터 2005년 말까지 시행된 후 올해까지 5년 연장되어 왔다.

국내 물류시장에서 육로운송 분담률이 90%에 가까운 상황에서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예상 외의 부작용을 낳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eHUB는 창간을 맞아 지난 4년 간의 화물차 증차금지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 보았다.  <eHUB 편집자>



정부 통제 오히려 시장 혼란 불러

정부의 이번 화물차 증차금지 연장 배경에는 여전히 시장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크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증차금지는 2003년 운수시장에서의 화물차 공급 초과에 따른 운임 저하로 화물연대 파업이 불거지자 마련한 조치로 차량 수급권을 시장 자율에서 정부 통제로 옮겨 화물차 운전사들의 불만을 무마하겠다는 의도였다.

문제는 당시 화물차 공급 초과가 8톤 이상 대형차 등 일부에 한정된 현상임에도 정부가 소형 택배차량을 포함한 모든 영업용 화물차의 증차를 금지한 데 있다. 물동량 증가가 크지 않은 수출입 화물운송에는 별 지장이 없었지만 매년 20% 이상 성장세를 보여 온 국내 택배시장에선 배송차량을 못 구해 업체마다 큰 곤란을 겪고 있다. 택배업체들이 지난 한 해 처리한 물량은 약 9억여개, 금액으로는 2조3000억원에 달한다. 물량에 비해 배송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차량 수급난에 편법 불가피 

이처럼 택배업계 등 소형 화물차를 중심으로 차량 수급에 애를 먹자 운송시장에선 냉동 특수차의 택배 전용, 번호판 바꿔치기, 자가용 불법배송 등 각종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 넘쳐 나는 물량을 외면할 수 없는 택배업체들은 서비스를 위해선 편법운영에 따른 비용 증가를 무릅쓰고서라도 배송할 수밖에 없어 열악한 택배시장이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한진택배 장지호 상무는 “화물차 증차금지는 택배업계로 하여금 매년 증가하는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별도의 용차(용달차량)를 비정상적으로 쓸 수밖에 없도록 내몰고 있다”며 “차량 확보와 용차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으로 인해 택배기업들의 수익률 악화는 물론, 고객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왜곡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일부 화물연대 관계자와 업계 전문가들조차도 “현 법규는 표면적으로 시장의 불만을 잠시 억누르는 효과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화물 근로자들이 요구했던 운임 인상은 없이 ‘영업용 번호판 장사꾼’이 대부분인 전국화물운송연합회 회원사들의 배만 불리는 기현상을 초래하고 있어 시급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6천~7천대 증차돼야

건교부가 작년 말 또다시 증차금지 연장을 확정하면서 발표한 ‘화물시장 동향 수치’를 보면 화물차량은 지난 10년간(1997~2006년) 약 20만2000대에서 36만4000대로 80% 늘었지만 물동량은 약 499만톤에서 529만톤으로 6% 증가하는 데 그쳐 여전히 작년 말 기준 약 2만1000대의 화물차가 공급 초과된 상태라고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현재 전국 운송망을 지닌 약 15개 택배업체와 100여개 소형 택배업체의 수배송 차량은 1만여대 정도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메이저 택배업체들은 약 300~400대, 중형 택배업체들은 500대~700대가 부족해 전체 택배시장에서 추가로 필요한 차량은 최소 6000~7000대에 이른다.

이에 대해 정부개편 전 건교부 물류산업팀 지종철 사무관은 “일반화물차 운송시장은 여전히 공급과잉 상태이며 다만 택배시장의 경우 차량 부족 상황은 파악하고 있지만 업체 난립에 따른 과열경쟁으로 수익률이 악화되고 있어 차량 수급을 자율에 맡기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택배업체들도 정부의 이같은 지적에 대해선 인정한다. 문제는 증차금지 조치가 정부의 예상대로 과열경쟁 해결의 대안이 못 되고 업계에는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을 발생시켜 수익률과 물류 서비스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결국엔 소비자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영업소들은 수수료가 높은 용차시장으로 옮아가 세력을 형성해 택배업체들의 차량 운영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택배업체들은 배송차량 확보가 어려운 상태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사 차량보다 50% 이상 높은 수수료를 내고 용차를 쓰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다 우체국 택배는 자가용 차량을 편법으로 배송에 이용하고 있으며 대다수 택배업체들마저 덩달아 전체 차량의 10% 정도를 자가용 화물차로 불법운영하고 있어 정부의 증차금지 조치와 공정경쟁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2004년 개정 당시 한시적(2년)으로 시행될 거라던 증차금지 조치는 매년 화물연대 파업 위협이 반복되면서 대책 마련 없이 2년이 연장됐고 지난해 또다시 1년 더 연장됐다.

물류 현장에선 차량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정부가 의도한 시장 효과는 미미한 상태에서 또다시 일률적으로 증차금지를 연장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며 물류산업의 경쟁력을 가로막는 전형적인 ‘전봇대 조치’라고 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자가용 택배’, ‘전봇대 법규’ 대책 시급

정부의 ‘일률적 증차금지’외에 화물운송시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가?

현대택배 양성익 부장은 “공무원들의 탁상행정 이론과 물류 현실이 너무 다른 만큼 정부 정책을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자가용으로 편법 배송하는 우체국 택배와 자가용 택배업체들부터 철저히 단속해 공정경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택배 장지호 상무는 “증차금지 조치는 정부가 의도한 시장 여건과 기업 수익률 개선, 서비스 업그레이드 등에도 도움이 안 되므로 당장이라도 법규를 재개정해 업계의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배는 성인 1인당 연 30회가량 이용할 정도로 이미 생활화된 물류 서비스이다. 배송용 차량 1대를 확보하기 위해 소형은 500만원, 대형은 1000만원이 넘는 번호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에서 택배산업의 경쟁력과 안정된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택배업계에선 “택배시장 배송차량은 물량이 증가하면 자연스레 증차하도록 하고 화물연대 컨테이너차량을 비롯한 일반 화물차량은 물동량 추이에 맞춰 시장 흐름대로 조정하면 된다”며 “일괄적인 증차금지 조치를 조속히 풀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시장개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현장검증을 통해 물량을 확인한 뒤 사업체별로 증차와 금지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와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러지 않을 바엔 공정경쟁을 통해 물량이 없는 곳은 퇴출되고 경쟁력 있는 운수사업자들은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물량이 없는 용달차를 택배차로 전환시키겠다는 정부정책이 300여대에 그쳐 실패로 끝난 만큼 시장원리에 맞게 법규를 재개정해 경쟁력 있는 사업자를 우대하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4년 넘게 고집해 온 증차금지 조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규제 완화로 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천명한 새 정부의 방침이 출발부터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정책 결정자들이 현 시장과 업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반문해 볼 시점이다.

손정우 기자 jws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