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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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표→ 38표→ 마지막 투표함서 ‘뒤집기勝’

접전지 개표 스케치
9일 박상천 공동대표등 지도부들이 종합 상황판에 당선자들에게 국회의원마크를 달아주고있다.  /지차수기자
선거운동 기간 내내 계속되던 박빙의 대결은 개표 과정에서 본격화됐다. 접전이 펼쳐지던 50여 지역구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엎치락뒤치락 선두가 뒤바뀌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개표 드라마’가 연출됐다.

방송을 통해 18대 총선 개표 결과가 시시각각 전달되면서 1위 후보가 바뀔 때마다 각 후보 진영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 4·9 총선을 앞두고 ‘형님공천’과 불출마 압력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포항 남·울릉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6선’고지 점령에 성공했다. 이 의원은 모처에서 혼자 개표 방송을 지켜보다 당선이 확실해진 이날 오후 8시55분쯤 지지자들이 모여 있는 자신의 선거사무실에 나타났다.

이 의원은 지지자들의 연호에 손을 들어 화답하며 “포항과 울릉 지역민들이 18대 국회에서 다시 일하게 해줘 감사드린다. 나의 당선은 국정 안정과 경제 살리기, 특히 지역경제 회생에 힘써 달라는 명령이자 기대로 여기고 충실히 받들어 나가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전에도 말했듯이 개인적인 정치적 위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어떤 직책도 맡지 않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오로지 지역 발전만 생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공천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후보 등록을 결심할 때가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갑 선거구에 출마한 통합민주당 문희상 후보와 한나라당 김상도 후보는 개표 막판까지 근소한 표 차이로 피 말리는 초접전을 이어갔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혼전 속에 승부는 마지막으로 투표함 뚜껑을 연 호원2동에서 갈렸으며, 결국 문 후보가 극적인 역전승으로 4선 고지에 올랐다. 문 후보는 개표 초반부터 500표 내외로 1위 자리를 빼앗긴 채 김 후보에게 끌려갔다. 개표율이 82.6%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김 후보에게 212표 차이로 뒤졌다.

그러나 호원2동 투표함이 열리면서 문 후보는 김 후보와의 차이를 좁히기 시작해 투표함 2개를 남겨 놓고 38표 차로 바짝 다가섰으며, 마지막 1개를 남겨놓고 역전에 성공해 결국 958표 차이로 승리했다

○…대구 수성을에 출마한 무소속 유시민 후보는 비록 낙선했으나 여당의 텃밭에서 예상 외의 높은 득표율로 선전했다는 평이다. 유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30%대로 15∼17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12.0%), 노무현(17.4%), 정동영(5.5%) 후보의 이 지역 득표율을 훨씬 넘어섰다.

17대 총선 때 탄핵 바람을 탔던 열린우리당 윤덕홍 후보도 수성을에서 21.7%를 얻었다. 지난 1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유 후보는 두 차례 당선됐던 경기 고양 덕양갑을 떠나 고향인 대구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은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바보 노무현’이란 유행어와 함께 열성적 지지층을 만든 ‘노무현 따라하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유 후보는 예비후보 등록 직후 선거구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대구에 출마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힘썼다. 동네 경로당과 등산로, 약수터 등을 다니며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자신의 이력과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기초노령연금을 제도화하는 등 노인복지에 힘쓴 ‘효자장관’이라고 강조했다.

팬카페 ‘시민광장’ 회원과 지지자들도 대구를 찾아 주말 거리유세에 참가하는 이색풍경을 연출했다.

지역정가 관계자는 “유 후보는 총선 득표를 통해 지역 내 정치적 발판을 어느 정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수원 영통은 통합민주당 김진표 후보와 한나라당 박찬숙 후보의 팽팽한 대결로 경기 지역 최대 접전지로 불린 곳이다.

김 후보는 오후 일찍 사무실에 나와 운동원과 지지자 100여명과 함께 개표 상황을 지켜봤다. 출구조사 결과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나오자 박수와 함성 터져나왔고, 이어진 개표방송에서 계속 선전하는 것으로 나올 때마다 박수와 함성은 이어졌다. 한 관계자는 “선거 전에는 초경합지역으로 분류됐지만, 선거운동을 하면서 당선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경쟁자인 박 후보 측 선거사무소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개표를 지켜봤다. 출구조사 결과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망하기보다는 끝까지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박 후보는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개표방송을 지켜보면서 중간중간 걸려오는 전화로 전황을 전했고, 운동원들은 여기저기로 전화해 지역구 투표상황을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부천 원미을의 한나라당 이사철 후보는 통합민주당 배기선 후보와 ‘1승2패’ 끝에 제18대 총선에서 의원 배지를 거머쥐면서 ‘2승2패’의 팽팽한 승부로 승률을 높였다. 지난 15대 총선부터 시작된 배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 당선자는 15대를 제외한 16대와 17대 모두 8000여표 차로 배 후보에게 잇따라 패했다.

지난 15대 국회의원 당시 신한국당에서 집권여당의 공격수 역할인 대변인을 지낸 이 당선자는 지난 8년간 ’와신상담’하며 재기를 노려왔다. 이 당선자는 “잇따른 낙선 후 부천지역 저변층(서민층)과의 교류가 깊어졌다”며 “지난해 대선 승리 이후 중앙당과 대통령인수위에서 불거진 각종 문제로 야당 후보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으로 15대 국회에서 법사위, 정무위에서 의정 활동을 했던 그는 18대 국회에서는 지역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설교통이나 산업 분야 상임위에서 일할 계획이다.

○…서울 도봉갑에선 운동권 출신의 뉴라이트 기수 한나라당 신지호 후보가 민주화 운동의 대부 통합민주당 김근태(3선) 의원을 꺾었다. 신 당선자는 이날 당선이 확정된 뒤 “민주화 시대가 끝나고 선진화 시대가 열렸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신 당선자는 뉴라이트 운동의 초창기 핵심 멤버로 대학 때부터 노동운동을 하다 1990년대 초 자유주의자로 전향한 386세대다. 참여정부의 386세력을 비판해 주목을 받았던 그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일본 게이오대학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해 왔다.

신 당선자는 자신의 승리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있다”며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1등이 된 적이 한번도 없기에, 도봉갑에서의 승리는 엄청난 선거 혁명”이라고 자평했다.

○…친박연대 김일윤 당선자는 18대 총선 경북 경주에서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와 4번째 대결을 펼쳐 승리했다.

이들이 첫 번째 대결을 펼쳤던 지난 15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 당선자가 자민련으로 나선 정 후보를 눌렀으며, 16대에서는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무소속의 정 후보를 이겼다. 17대 총선에서는 정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면서 김 당선자가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로써 김 당선자는 12, 13, 15, 16대에 이어 18대에서도 국회 진입에 성공해 5선 고지에 올랐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운동원의 금품살포 사건이 터지면서 고전했지만 김 당선자는 이 같은 악조건을 극복하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다선’이 귀한 울산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3선 중진의원 3명이 동시에 탄생했다.

울산도 영남의 여타 지역처럼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곳이지만 “울산시민은 3선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말이 한때 나돌 정도로 다선 의원이 거의 배출되지 않았으나 이번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3선’ 3명이 동시에 나온 것이다.

특히 이들 모두 집권당인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개인적으로 지역과 중앙에서의 정치적 입지와 역량, 기반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범현대가의 아성인 동구에서 정몽준 의원이 13∼17대에 걸쳐 내리 5선을 했을 뿐 3선 이상은 12·13·15·16대 4선의 고(故) 김태호 전 의원과 8∼10대에서 3선을 기록한 최형우 전 의원뿐이었다.

울산에서 광복 이후 지역을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적 인물로 꼽히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도 국회의원 배지는 한 번(10대)밖에 달지 못했고 심완구, 이규정, 차수명, 권기술 전 의원 등도 재선에 만족해야 했다.

황계식·조수영 기자 cult@segye.com